시간이 완성한 완벽한 호흡의 무대였다. 1548년 창단한 독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수석 객원 지휘자로 이 악단과 10년 넘게 함께한 지휘자 정명훈, 정명훈과 15년간 수차례 호흡을 맞춰 온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쌓아 올린 세월의 흔적은 안정감 있으면서도 극적인 실연으로 승화됐다.
3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4년 만의 내한 연주회는 조성진의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문을 열었다. 이 곡은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 중 하나로, 조성진이 16세 때부터 쳤던 곡이자 정명훈의 지휘로도 10번 이상 연주한 곡이다. 그래서인지 이날 연주는 조성진 특유의 정교한 타건, 섬세한 셈여림과 함께 여유가 느껴졌다.
조성진이 이 악단과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함께 연주한 것도 지난달 말 독일 드레스덴에서의 연주와 전날 세종예술의전당 공연에 이어 이날이 벌써 다섯 번째 무대였다. 이제 서로에게 익숙해진 듯 2악장에서 첼로 솔로(수석)와 피아노가 선율뿐 아니라 연주자 간의 눈빛도 함께 주고받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연주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조성진에 대해 "흐뭇하고 자랑스럽다"고 했던 정명훈은 연주가 끝나자 만족한 듯 조성진을 힘껏 포옹했다.
조성진의 앙코르곡은 최근 도이치그라모폰(DG)을 통해 발매한 신보 '헨델 프로젝트' 수록곡인 헨델 모음곡 HWV 440 III '사라방드'였다. 조성진은 페달을 사용하지 않은 담백한 연주로, 헨델이 프로그램에 포함된 7월 리사이틀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과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 서곡을 연주한 2부는 독일 정통 관현악 사운드로 각광받아 온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정명훈은 조성진뿐 아니라 악단을 향해서도 무한한 신뢰를 온몸으로 표현했다. 이날 1, 2부를 모두 보면대 없이 암보(暗譜)로 지휘한 정명훈은 대체로 움직임이 크지 않았다. 악단은 지휘자의 크지 않은 몸짓에도 마치 한 몸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현악기의 울림은 깊었고 관악기는 섬세했다.
2부를 마치고 정명훈은 관객에게 "오케스트라가 너무 잘하죠"라고 말하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마지막 네 번째 커튼콜에서는 악단에서 한 발짝 떨어져 관객과 함께 악단을 향해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2부 앙코르곡으로는 7, 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을 브람스 교향곡 전곡 연주 일정의 티저를 공개하듯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을 들려줬다. 다른 아시아 국가를 들르지 않고 한국에서만 여섯 차례 공연하는 단독 투어인 이번 일정은 7일과 8일에 각각 브람스 교향곡 1·2번과 3·4번을 연주하며 마무리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3년간 웅크렸던 관객들은 이날 우렁찬 함성으로 황홀경의 연주에 화답했다.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의 내한 일정이 줄줄이 예정된 올해 화려한 클래식 음악계 라인업의 본격적 시작을 알리는 함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