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세 어르신은 지하로 열네 계단을 내려가, 장판 밑에 물이 흐르는 집에 사셨다. 서울 성동구 사회서비스원 소속 요양보호사 K는 '어머 세상에!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어?' 놀랐지만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그 어르신이 저랑 인연이 되었을 때, 현재의 모습뿐만 아니라 그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그분의 일생이 함께 온다는 걸 깨달은 거예요.(…) 이분의 현재 환경을 보고 현재보다는 나은 미래를 제시하려면, 일단은 제가 어쨌든 공공기관에 들어왔으니, 주민센터나 구청이나 복지재단 같은 데 연계를 해서 환경개선을 먼저 한 다음에 생활개선을 좀 하고, 사비를 들여서라도 식습관 개선 같은 것도 하면서(…)"
그는, 사람 중심이 되지 않으면 이 돌봄은 '하는 척 시간만 때우는' 것 이상이 되기 힘들 것임을 깨달았다. '물론 인생이 계획대로는 안 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하는 이유다.
공공기관 소속 돌봄 노동자로서 가능한 제도들을 연계하고 인적·물적 자원을 최대한 동원하다 보면 평생 고되게 살아오신 어르신에게 적어도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을 만들어 드릴 수 있게 된다. 태그를 찍고 하는 돌봄 서비스는 3시간이라지만, 92세 어르신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오늘을 누리실 수 있도록 그가 고민하는 좋은 돌봄에는 시간제한이 없다. 머리와 마음을 써서 궁리하고, 좀 더 여유가 있는 이웃 동네의 지원을 받고자 발품을 팔고, 카톡 등 단톡방이나 기관에서 하는 정기회의에서 동료의 의견과 도움을 청한다. 토요일 같은 날은 외부에서 어르신과 점심을 같이 먹고 산책도 한다. 어르신에게 생애 처음으로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골라 보는 경험을 안겨 드리기도 한다. 이렇게 '좋은 돌봄'의 용량을 최대한 확장하려는 그의 노력은, 당연히, 성과가 있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래도 내가, 너라고 하면 안 되지만, 너를 만나서, 늦복이라도 있어서 이런 좋은 식당에 가서 밥도 먹어보고,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날엔가 어르신이 툭 던지신 말씀이다. 2021년 K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회적 인정과 경제적 안정이 보장될 때 어떤 돌봄이 가능한지, 현재 시장에서 제공되는 노년 돌봄 서비스가 얼마나 최소한으로 축소된 것인지 뚜렷이 확인할 수 있었다.
사회서비스원이 직접 고용한 정규직 월급제 돌봄 전문가가 아니었다면 해내지 못할 돌봄이었다. 사회서비스원은 2019년에 시범사업으로 시작했고, 2021년에는 미약하나마 사회서비스원 설립 및 운영에 대한 근거법도 제정되었다. 돌봄의 공공성 강화를 명확한 추세로 정착시킴으로써, 시장의 서비스 제공자들의 행동 양식을 바꿔내야 할 사회서비스원은 그러나 지금 전국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작년 11월,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워원회 유만희 부위원장은 "서사원(서울사회서비스원)과 달리 민간은 건강보험료에서 받는 수급액만으로 요양보호사 인건비도 주고 운영비도 댄다. 공공이 뼈를 깎는 자구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서울시가 책정한 예산 168억 원 중 62.1%에 해당하는 100억 원을 삭감했다. 기본적으로 공공돌봄의 의미가 무엇인지, 서사원이 왜 설립되었는지 전혀 모르는 거다. 아니, 돌봄 자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감각도 상상도 없는 상태에서 돌봄은 무조건 '싸야 한다'고 우기는 거다. 4월 추경에서 삭감된 예산안이 복원되지 않으면 서사원은 생존하기 어렵다. 정의로운 4월을 희망하고 싶다.
※ 요양보호사 K의 사례는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이 한국여성재단 지원을 받아 진행한 '노인요양시설 안팎의 돌봄을 여성주의적으로 기록하고 해석하기' 연구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요양보호사 인터뷰 중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