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배우 줄리아 로버츠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 이 영화의 실제 모델이었던 에린 브로코비치는 두 번의 결혼 끝에 세 자녀를 둔 싱글맘이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반 사무원으로 일하게 된 브로코비치는 미국 에너지 기업 PG&E가 캘리포니아주(州) 힝클리에서 중금속 오염 폐수를 흘려 보내 주민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변호사와 협력해 1993년 환경오염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3년 뒤 당시 기준 미국 역사상 최고액 배상 합의금 3억3,300만 달러(약 4,400억 원)를 받아냈다. 그는 이후로도 미국 환경보호 활동가로 활약하며 관련 소송에 자주 이름을 올렸다.
브로코비치가 24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 이스트팔레스타인에 나타났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인구 4,900명의 조용했던 마을 이스트팔레스타인은 지난 3일 밤 발생한 150량짜리 화물열차 탈선ㆍ화재 사고로 미 전역에 알려졌다. 화학물질 등을 싣고 이곳을 지나던 열차가 차축 고장으로 선로를 이탈하는 과정에서 화차 50칸이 불길에 휩싸였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플라스틱 성형 원료인 염화비닐 등 유독물질을 실었던 화차에서 발생한 화재와 유독가스 때문에 주민 2,000여 명이 긴급 대피해야 했다.
문제는 화재 진압 후에도 이어졌다. 화차가 불타면서 주변이 오염됐고 물고기 등이 떼죽음을 당했다. 미 환경보호청(EPA)은 화물열차를 운행했던 철도회사 노퍽서던철도에 주변 지역 유독물질 제거 명령을 내렸다. 공기 질은 안전한 수준으로 회복됐고, 수돗물 수질검사에서도 이상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EPA는 발표했다.
그러나 일부에선 1986년 구소련 체로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와 비슷한 환경 재앙이라며 ‘체르노빌 2.0’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주민들의 불안도 계속됐다.
AP통신에 따르면 브로코비치는 변호사, 과학 및 의학 전문가 등과 함께 ‘이스트팔레스타인 저스티스(정의)’라는 단체를 만들고 소송을 준비 중이다. 그는 24일 설명회에서 “당신들은 (당국이나 기업으로부터) 무언가를 듣고 싶겠지만, 안전하다는 말이나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나올 것”이라며 “그건 그냥 쓰레기(와 같은 말)”라고 주장했다.
행사에 나온 미칼 왓츠 변호사는 법적 조치를 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소송 참여 주민들에게 혈액과 소변 검사를 받으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그는 “여론 재판과 법에 따른 재판은 다르다”며 “우리는 증거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브로코비치는 건강과 환경 위협이 수년간 계속될 것이라며 “이것(소송)은 긴 경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도전은 PG&E 소송 때처럼 성과를 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