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1년(24일)을 앞두고 최우방 국가인 중국의 지지를 적극 요청하고 나섰다. 그러나 중국은 직접적 언급을 피하며 '절제된 톤'으로 대응하고 있다. 국제무대에서 분쟁의 '중재자' 역할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2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 외교 사령탑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은 이날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해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국가안보실 서기와 회담을 가졌다. 파트루셰프 서기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힌다. 이 자리에서 그는 "중국과 전략적 협력 관계를 발전시키는 건 러시아 외교 정책의 무조건적 우선순위"라며 "러·중 관계는 본질적으로 중요하고 외부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파트루셰프 서기는 특히 "우크라이나에서 서방이 벌인 유혈 사태는 하나의 예일 뿐"이라며 "러시아와 중국을 봉쇄하려는 서방의 노력에 맞서 국제 영역에서 양국 간 협력 심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서방의 압박을 함께 이겨내자고 호소한 셈이다.
왕 위원도 "(중·러 관계는) 바위처럼 단단하며 변화하는 국제 정세의 시련을 견뎌낼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어 "변화한 국제 정세로 인한 어떤 도전도 이겨낼 것"이라며 "중국은 국익을 수호하고 호혜 관계를 증진하기 위해 러시아와 함께할 준비가 됐다"고 덧붙였다.
다만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공개적 발언은 피했다. 중국 외교부는 22일 이번 회담 소식을 전하며 "양측이 냉전적 사고방식 도입, 이데올로기적 대결을 반대한다는 데 공감했다.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고만 짧게 밝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지난해 2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공동선언문을 통해 "양국 간 협력에는 한계가 없다"며 스킨십을 한껏 과시했던 데 비해선 상당히 절제된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시 주석이 조만간 러시아를 찾아 푸틴 대통령을 만날 것으로 알려져 중국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 "현재는 방문을 준비하는 초기 단계로, 4월이나 5월 초쯤이 될 것"이라며 이같이 보도했다.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기념하는 전승절(5월 9일)을 전후해 시 주석의 러시아 방문이 이뤄질 것이라는 게 WSJ의 관측인데, 정확한 일정은 다음 달 열리는 중국 최대 연례 정치행사인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끝난 뒤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
시 주석은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 문제와 관련, '중재자'로서의 면모를 강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양국 간 전략적 연대를 이어가면서도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회담을 촉구하는 입장을 취할 것이라는 얘기다. 중국은 24일 우크라이나 평화를 위한 협상안도 공개할 예정이다.
WSJ는 중국이 보다 중립적 위치로 이동하는 흐름에 주목하며 "중국에 대한 서방의 불신에 대응하려는 차원"이라고 전했다. 중국이 러시아의 최우방이라 해도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 '러시아를 지원하지 말라'는 미국 및 유럽의 압박에 마냥 모르쇠로만 일관하는 건 쉽지 않다는 뜻이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전쟁 장기화에 따라 러시아에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는 중국의 외교적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며 "중재자 스탠스를 취해 서방의 압박을 낮추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