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를 닮은 올림픽주경기장, 대학로 마로니에의 아르코예술극장과 미술관, 공간 사옥.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주요 건축물이다. 세운상가, 주한미대사관 등 역사적 건축물이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가 독재의 상징이자 끔찍하게 인권을 유린한 남영동 대공분실의 설계자라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연극 ‘미궁의 설계자’는 바로 김수근의 남영동 대공분실 설계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김수근이 애초에 이 건물의 목적이 고문임을 알지 못하고 설계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연극에는 그러한 의견도 반영돼 있지만 대체적으로 그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입장을 취한다. 고문자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고문실이 있는 5층 창문을 아이조차 머리를 내밀지 못하도록 좁고 길게 낸 것이나, 밖에서만 열 수 있게 한 출입문의 구조, 그리고 좁은 방마다 설치한 욕조 등 이미 그곳은 고문에 최적화한 공간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건축가의 업적과 공간의 사회적 의미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건축가의 윤리성을 어디까지 물어야 하는지는 어려운 문제고, 게다가 그 누구도 그가 대공분실을 지었던 상황을 정확히 모른다. ‘미궁의 설계자’는 세 개의 시간대를 통해 김수근이 설계한 대공분실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재구성한다.
김민정 작가는 서로 다른 세 시간대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의미가 겹치고 확장되도록 극작했다. 첫 번째는 1975년 대공분실이 기획되는 시점이다. 국가 권력으로부터 건물 설계를 의뢰받고 진행하는 과정을 김수근 설계사의 직원이었던 양 실장의 눈을 통해 보여준다. 두 번째는 피해자의 시간대다. 1986년 송경수는 여자 친구를 기다리다 남영동으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목숨을 잃는다. 취조와 고문의 과정이 재현되고 경수의 시선으로 이 건물에서의 실질적 경험을 감각하게 한다. 세 번째는 현재의 관점에서 기록과 평가의 시간대다. 건축가와 건물의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 권 피디가 해설사 윤미숙에게서 건물의 내력을 듣게 된다. 권 피디는 건축가를 옹호하는 태도를 취하지만 해설사는 완고하게 비판적 시선으로 장소의 역사를 들려준다.
작품에는 관객이 가장 궁금해하고 또 가장 중요한 김수근의 목소리가 배제되어 있다. 그의 목소리가 개입된다면 자기변호이거나, 주관적 변명에 그쳐 객관적으로 살피기 힘들기 때문이다. 1975년 설계를 의뢰받는 장면도 그의 자리는 빈자리로 남겨두고 주변에 있던 양 실장을 통해 표현된다. 양 실장에게는 관찰자의 역할을 부여하되, 양 실장을 맡은 배우가 김수근을 표현하는 듯한 몇몇 장면을 넣어 양 실장의 관련자로서의 책임을 함께 부각한다.
대공분실의 세로 창문과 거대한 철제문 등 대공분실의 건물 구조를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하얀 캔버스 같은 빈 무대에 스케치되어 표현된다. 김수근의 것으로 보이는 설계 테이블과 고문용 테이블 등 작은 소품들의 등·퇴장으로 세 시간대가 서로 스며들며 각 인물들의 상황과 이야기가 펼쳐지게 했다. 송경수가 취조를 받고 있는 장면은 클로즈업된 영상이 실시간으로 대공분실의 거친 벽면에 투사돼 인물들의 표정과 상황을 생생하게 감각하고 응시하게 했다. ‘응시’는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콘셉트다. 연극 ‘미궁의 건축가’는 미궁을 설계한 당사자를 직접적으로 등장시키지 않고 서로 다른 시간대의 인물들과 사건을 ‘응시’함으로써 그와 그 건물의 의미를 관객 스스로 판단하게 한다.
작품 속에서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간 송경수는 5층까지 이어진 나선계단을 통해 이동하며 자신이 정확히 몇 층의 어디로 끌려가는지 알지 못한다. 세련되고 모던한 디자인으로 여겨졌던 건축물이 거대한 폭력을 품고 있었다는 인식에 이르는 과정은 섬뜩하다. 연극이 공연되는 아르코예술극장 역시 김수근의 건축물이다. 이곳에도 지상으로 올라가는 나선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은 예술극장 소극장의 나선계단을 이용해 나갈 수 있다. 실제 김수근 건축물의 특징인 나선계단을 오르며 작품에 대한 많은 질문을 반추하게 된다. 26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