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안 주는 한국, 국익 위해 다시 생각하길"[인터뷰]

입력
2023.02.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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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1년, 우크라이나를 다시 가다] <3신> 
국제정세 전문가 페트로 부르코우스키 인터뷰 
우크라 전쟁 국면서 '한국' 거론되는 이유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관련 국제사회 논의에서 한국이 거론되는 일이 많다.

우선 '전쟁이 어떻게 끝날까'를 전망하는 과정에서 '한국식 분단 모델'이 언급된다. "전쟁으로 끝장을 보기보다는 우크라이나 영토 어딘가에 선을 그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남한과 북한처럼 분할 통치하는 게 현실적인 시나리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는 '살상 무기를 지원하라'는 취지로 한국을 압박했다.

한국일보는 우크라이나의 대표적인 싱크탱크 '일코 쿠체리우 민주적 이니셔티브 재단'의 페트로 부르코우스키 전무이사와 21일(현지시간) 수도 키이우 사무실에서 만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한국의 역할'을 주제로 인터뷰했다. 부르코우스키는 국립전략연구소 러시아 센터장 등을 역임한 국제정세 전문가다. 동아시아 문제에도 정통하다. 러시아의 선전매체 활동을 감시하는 기관도 이끌고 있다.


◆한국식 남북 분단 모델, 가능할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부인하지만, "한국식 분단 모델이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는 휴전·종전 해법"이라는 주장이 끈질기게 오르내린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전략소통보좌관을 지낸 올렉시 아레스토비치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서방은 '또 다른 한국'을 우크라이나에 세우겠다는 시나리오를 고려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부르코우스키는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단언했다.

①부르코우스키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재단이 지난해 12월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응답자의 63%가 "우리가 승리해야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답했다. '무엇이 승리인가'를 두고는 54%가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러시아군을 축출하고 국경을 복원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93%가 "승리를 확신한다"고 답했다.

부르코우스키는 "우크라이나 국민 절반이 '서방 국가의 지원이 없어도 싸우겠다'고 말한다"며 "포기, 양보, 타협은 많은 국민들에게 선택지가 아니다"고 말했다.

러시아에 대한 분노·증오가 커질수록 "끝까지 싸우자"는 여론도 높아졌다. 부르코우스키는 "러시아군이 집중 폭격한 자포리자와 미콜라이주에서 비공개 여론조사를 실시해 보니, '러시아를 파괴할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민심이 오히려 늘었다"면서 "폭격으로 전쟁을 포기할 것이란 예상이 빗나갔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수많은 전쟁 범죄를 저지른 만큼 용서할 수 없다는 의지도 확고하다. 부르코우스키는 "우크라이나 영토 일부를 러시아에 넘긴다면 그곳에서 또 다른 범죄가 발생할 것"이라면서 "이미 생존 위협에 노출된 우크라이나인들에게 '타협하거나 양보한다'는 건 '죽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③부르코우스키는 또 "전략적 관점에서 보면, 휴전을 시도할 경우 러시아군에 힘을 다시 비축할 기회만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한국의 동맹 미국처럼 강력한 군사동맹이 없고, 나토에 가입하지도 못했다"면서 "러시아는 휴전 기간을 활용해 재무장한 뒤 다시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르코우스키는 "분단된 남한과 북한이 서로를 한 민족으로 여겼던 것과 달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서로를 원수로 본다"면서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한국은 살상무기 제공해야 할까?

부르코우스키는 "북한과 대치 중인 한국이 무기를 직접 지원하지 못하는 사정을 이해한다"면서도 "한국 정부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촉구했다.

부르코우스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기점으로 국제사회의 '민주주의 진영 대 독재 진영'의 분열이 극명해졌다"며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들이 연대해야 세계의 퇴행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부르코우스키는 한국의 과감한 무기 지원이 한국과 유럽 국가들의 연대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도 제시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는 건 유럽 국가에 대한 안보에 기여한다는 뜻"이라며 "이미 중요한 정치·경제 분야 파트너인 한국과 유럽 국가 사이의 신뢰가 더 단단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이 길어지며 러시아의 무기 잔고가 떨어졌다는 관측이 잇달았다. 그럼에도 버티는 건 북한, 중국 등의 지원 덕분이라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의심한다. 북한은 최근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을 내세워 "낭설을 계속 퍼뜨리며 집적거리다가는 정말로 재미없는 결과에 직면하게 된다"며 러시아 지원설을 부인했다.

부르코우스키는 북한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북한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 보면, '무기 지원설을 공개적으로 부인해 달라'는 러시아의 요구를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최빈국인 북한에 손을 벌리는 것 자체가 치욕이기 때문이다.

키이우= 신은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