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이다. 출근하는 병수씨(32)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주말 내내 불면증과 두통에 시달렸고, 얼마 전부터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경력직 채용정보를 보며 이직준비를 시작했다. 병수씨의 상사인 김 팀장(40)은 보고서의 사소한 실수를 트집 잡아 "회사 때려쳐라. 왜 사냐? 멍청아. 네가 그래서 안 되는 거야"와 같은 폭언과 폭설을 서슴지 않았고, 다른 직원들 보는 앞에서 보고서를 찢어버리기도 했다. 다른 직원들이 꺼리는 허드렛일을 병수씨에게 배정했고, 업무에 필요한 정보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병수씨는 일에 대한 모든 의욕을 상실한 채 사직서를 제출하게 될 날만 기다리며 집과 회사를 무기력하게 왕복하고 있다.
직장인의 70%가 경험했다고 답변(국가인권위원회, 2017년 조사)한 '직장 내 괴롭힘'은 조직 내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다. 위계질서가 있는 조직 내에서 집단생활을 하면서 아무런 갈등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수는 없다. 상사와 부하직원 간에, 또는 동료 간에 지혜롭게 의사소통하며 해결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개인이 감당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구조적인 괴롭힘도 존재하며, 이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이 조직에 미치는 손실비용이 연간 약 4조 원으로 추산(한국직업능력개발원, 2016년)될 정도로 직장 내 괴롭힘은 기업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 2에 따르면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는다'는 것의 의미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형법상 범죄가 되는 폭행, 협박, 명예훼손, 모욕 등이 수반된 괴롭힘이 여기에 해당되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당한 업무지시권의 외양을 띠고 괴롭힘, 차별, 따돌림이 존재하는 경우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일률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위 사례에서 김 팀장은 병수씨가 인격적으로 모멸감을 느낄 만한 폭언을 했으므로 형법상 모욕죄가 성립할 수 있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될 수 있다. 그러나 병수씨의 잦은 작은 실수에 대해 주의를 주는 과정에서 다소 감정이 격해져 목소리가 높아진 정도이거나, 병수씨의 업무능력이 부족해서 팀 내의 사정상 단순업무를 배정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라면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한편 병수씨의 회사가 구조조정을 위해 병수씨가 스스로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가학적인 인사관리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병수씨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원칙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괴롭힘에 해당하는지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에 대한 처벌규정이 존재하지 않고, 회사의 자율적인 시스템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한 경우 조사 및 사후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괴롭힘 행위를 하는 당사자가 사용자인 경우에는 실효성이 크지 않다. 직장 내의 단순 갈등을 넘어선 괴롭힘 행위에 대해, 예방 및 점검, 사후관리를 하는 제도적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