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라틴계, 여성, 성소수자(LGBTQ)가 함께 행진하고 있다. 당신이 우리 모두를 하나로 모았다!"
15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州) 주도인 탤러해시에 모인 1,000여 명 앞에서 흑인 민권운동가 앨 샤프턴(69) 목사는 이렇게 외쳤다. '리틀 트럼프'로 불리는 공화당 유력 대선주자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 향해서다. 2024년 대선을 앞두고 그가 연일 게이·흑인 등 소수자 공격에 열을 올리자 '디샌티스 반대 세력' 규합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날 시위에선 샤프턴 목사를 비롯해 저명한 흑인 지도자 수백 명이 앞장섰다. 1950~1960년대 인종에 따라 좌석을 구분했던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을 시작으로 인종 차별 폐지를 쟁취한 민권운동 원로들이 다시 거리에 선 것이다.
흑인 커뮤니티가 똘똘 뭉친 데는 2016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당선시킨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다고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소수자 혐오'를 발판으로 급부상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미온적으로 대응했던 것을 반면교사 삼겠다는 것이다. "디샌티스의 득표 전략이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더 '인종적 분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우려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이미 속내를 드러냈다. 올해 1월 고등학교의 대학 학점 인정 선이수(AP) 과목 중 '아프리카계 미국인 연구'를 주내 공립학교에서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교육적 가치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해당 과목은 흑인 역사에 퀴어나 페미니즘 등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다"고도 했다.
이는 "흑인 역사를 지우려는 시도"라는 반발을 불렀다. 흑인 차별 상징인 남부연합 기념물 철거를 추진해온 플로리다주 잭슨빌의 '노스사이드 연합' 설립자인 벤 프레이저(72)는 "AP 과목에 대한 반대는 곧 흑인에 대한 공격"이라며 "디샌티스가 민권운동의 성과를 다시 그 이전 시대로 되돌리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번 시위는 대선 레이스가 본격 막을 올리면 전국적으로 일어날 거센 반발의 예고편이다. '반트럼프' 진영을 중심으로 일찌감치 '반디샌티스' 대오 정비에 나선 것이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지난해 3월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에게 성 정체성 교육을 금하는 이른바 '돈 세이 게이(Don't say gay)' 법안에 서명했다. 학교와 직장에서 '비판적 인종 이론(CRT)' 논의를 제한하는 '워크 중단 법안(Stop WOKE Act)'도 지난해 4월 주의회에서 통과시켰다. CRT는 법과 제도가 흑인 차별을 초래한다는 이론으로, 미국 내 '문화 전쟁'의 화두다.
자신을 일약 '전국구 정치인'으로 키워준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부터 제대로 정치를 배운 셈이다. 오히려 '트럼프의 진화된 버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민주당의 전략가이자 기금 모금가인 아킬라 엔슬리는 "흑인 민주당 기부자들 사이에서 디샌티스가 주요 위협이 되고 있다는 수군거림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그는 멍청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든다"고 했다.
디샌티스 주지사가 소수자 혐오 정치로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재미'를 볼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중도층 유권자의 이반을 부를 수 있다고 WP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