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중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던 경험이 영어 공부에 불을 지폈습니다."
두 손녀를 둔 대구 동구의 60대 할머니가 독학으로 토익 만점을 맞아 화제다. 지난해 12월 25일 치러진 토익 시험에서 만점을 기록한 정윤선(62)씨가 주인공이다. 2009년 치른 첫 토익 시험에서도 970점을 받은 정씨는 14년 만에 만점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정씨는 40세였던 2001년 미국 중부의 한 대학에 교환교수로 간 남편을 따라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문법 위주의 암기식 교육이 전부였던 정씨에게 언어 장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남편이 없으면 미국인들과 대화를 나누기 힘들었다. 정씨는 한국일보와 지난 8일 만나 "당시 미국에서 한국식으로 '밀크'(우유)와 '레투스'(양상추)를 말했는데 마트 직원이 알아듣지 못해 애를 먹었다"며 "은행 업무와 주택임대차 계약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고 회상했다.
취업도 할 수 없는 비자를 받아 미국에 들어왔기 때문에 정씨는 남편이 출근하고 두 자녀가 학교에 가면 집에서 하루 종일 혼자 있어야 했다. 영어를 몸소 체험할 기회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학구열과 도전의식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정씨는 "영어를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던 간절한 심정에 자신감을 갖고 실전 영어에 매진했다"고 강조했다. 남편이 공부했던 토플 교재의 단어와 표현, 문법을 통째로 외우며 기본기를 다졌다는 게 정씨 설명이다.
토익과의 인연은 우연찮은 기회에 찾아왔다. 미국 현지 도서관에서 접한 토익 교재 내용이 실생활과 직결돼 있어 본격적으로 토익 공부에 전념하게 된 것이다. 그는 "한국의 영어학원에서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예제를 매일 훑어보기도 하며 실력을 키웠다"며 "설거지할 때도 영어소설을 듣고, 머리가 복잡할 때면 토익 교재를 보면서 집에서도 실전 문제를 풀었다"고 말했다.
8년간 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정씨는 2009년 처음으로 토익 시험을 봤다. 970점이라는 고득점을 받고 자신감이 생겼다. 그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영어 공부가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며 "언어를 배우는 게 새로운 뇌의 영역을 자극해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을 막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정씨는 최근 자신이 갈고닦은 영어 실력으로 나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대구의 문화센터와 복지관 등에서 어린이와 노약자 등을 대상으로 영어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영어는 공부한 만큼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면서 "영어를 구연동화에 접목해 교육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