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궂은 어느 저녁, 국숫집에서 허기를 때우던 중이었다. 가게 앞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같이 밥을 먹던 사람과 '아이고, 가게 앞에서 웬 담배야' 하는 멸시의 눈빛을 나누던 중 할아버지가 가게로 들어왔다. 술 냄새가 확 퍼졌다. 우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마저 국수를 먹었다. 그릇을 비우고 나서니 길가에 아까 그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마침 할아버지가 저쪽을 보며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맞은편에서는 땅딸막한 호두개가 느적느적 걸어오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더니 그 개에게 주었다. 고기였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서자 할아버지는 "내 개는 아니오, 국숫집에서 남은 고기를 얻어와서 만날 개한테 주지" 하며 웃었다. 그제야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바로 보았다. 주름 사이에 선한 마음이 자글자글 끼어 있었다. 좀 전에 그의 뒷모습만 보고 떠올렸던 '민폐'라는 단어가 슬그머니 꽁무니를 내뺐다. 부끄러웠다. 이런 식으로 나는 얼마나 많은 이들을 판단했을까. 얼마나 많은 얼굴을 놓쳤을까.
박완서, '잃어버린 여행가방'
이 책은 작가가 살아생전 자주 가곤 했던 국내 지역과 국외의 혜택받지 못한 지역을 여행하고서 쓴 기행산문집인데, 한편으로는 어떤 부끄러움의 기록이기도 하다. 흔히 여행을 가면, 낯선 풍광에 들떠 그 고장의 이색적인 음식이나 유명 관광지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기 쉽다. 시간에 쫓겨 여행지의 앞모습만 보고 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우리네 여행 세태를 꼬집듯 박완서 할머니의 시선은 분주하다. 그에게 여행이란, 그간 살며 박인 굳은살 같은 생각을 사정없이 뜯어내는 경험인 듯하다. 여행지의 아름다운 앞모습에 도취되지 않고, 그늘과 양지를 두루 보며 숨 쉬듯 반성하고 나를 돌아본다. 혐오했다가 안쓰러워했다 하는 대상은 나 자신이기도 하고, 여행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런 기록이 가능한 이유는, 그가 타고난 관찰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쉽게 스쳐 지나갈 법한 세상의 수많은 얼굴을 기어코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려는 그의 이해심 덕분이 아닐까.
작가는 첫 해외여행에서 여행가방을 잃어버린다. 가방 안에는 더러운 속옷과 양말, 그리고 슈퍼에서 산 당시 귀했던 인스턴트 커피가 옷가지 틈틈이 끼워 있었다. 이 여행가방은 자신의 나태와 내 나라의 궁핍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남이 절대 열어서는 안 되는 창피함이다. 작가는 가방을 찾지 못해 한동안 수치심으로 괴로워하다가 말미에는 이러한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 육신이란 여행가방 안에 깃들었던 내 영혼을, 절대로 기만할 수 없는 엄정한 시선, 숨을 곳 없는 밝음 앞에 드러내는 순간이 아닐까. (…) 나를 숨겨준 여행가방을 미련 없이 버리고 나의 전체를 온전히 드러낼 때 그분은 혹시 이렇게 나를 위로해주지 않을까. 오냐, 그래도 잘 살아냈다. 이제 편히 쉬거라.
정작 찾아야 할 것은 가방이라는 허물이 아니라, 그 속에 든 한 치 부끄러움 없는 영혼이라는 사실을 작가는 비로소 깨닫는다. 그가 오래도록 끌어안은 부끄러움 덕분이다. 부끄러움은 그런 힘이 있다. 굳은 마음의 때를 벗겨내어 맨들맨들한 마음을 되찾게 하는, 그런 힘 말이다.
잘 써진 글을 읽을 때 나는 안심이 된다. '30년 무사고 운전' 팻말을 단 택시를 탄 기분이다. 나는 무사고 박완서 할머니 드라이버가 반듯하게 깔아놓은 글자 도로를 따라 책에 새겨진 풍경을 넋 놓고 본다. 그늘진 곳, 엉성한 곳, 발길이 닿지 않은 곳까지 꼼꼼히 둘러보고 마침내 닿은 종착지에서 돌아온 길을 가늠해본다. 참 좋은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