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국경검문소의 수비대원들이 한국 여권 소지자에게 시험지를 나눠준다. 시험지에는 한글로 된 20개 정도의 문항이 있다. '한국 제2의 도시는?' '다음 한국 대통령 이름을 순서대로 쓰시오.' 북유럽 어느 국경 초소에서 한국어로 된 이런 문제를 풀어야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이 시험은 한국 여권을 가지고 러시아에서 핀란드나 에스토니아 국경을 넘으려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한국인임을 확인하는 이 시험을 에스토니아에서는 2002년부터 시행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전 세계에서 한국 여권의 힘은 최상위권이다. 입국할 수 있는 국가와 속령이 190곳에 달하는 한국 여권은 독일과 함께 세계 공동 2위이다. 국경을 넘는 데 수월한 만큼 위조 여권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한국 여권을 들고 있는 사람이 정말 한국인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시험, 다시 말해 '한국인 확인 시험'이 생긴 것이다.
그러면 무엇을 물어 한국인이라는 것을 확인할까? 핀란드 국경에서는 역대 대통령의 이름, 경부선 구간, 긴급사고 시 거는 전화번호, 한국 제2의 도시 등 사회 지식을 물었고, 에스토니아 국경에서는 '다음 중 가수가 아닌 사람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는 한국 야구 선수는?'과 같은 문화적 사실을 물었다고 한다. 응시자들이 가장 어려웠다고 한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사회 문제도 문화 문제도 아닌, 전 국민이 다 안다는 동요의 한 구절을 채우는 것이었다.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떼 □□□ 봄 나들이 갑니다.' 국경을 통과할 자신이 있는가?
시험 문제 유형으로는 답을 고르는 문제도 있고 괄호 안에 직접 써야 하는 것도 있는데, 한글을 잘 쓰지 못하거나 답을 못 맞히는 사람은 현장에서 신분조회를 한다. 어둑어둑한 국경 초소, 그것도 총을 든 군인 앞에서 한국어 시험을 보는 긴장감을 상상해 보라. 한국인임을 증빙하라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나, 진짜 한국인인데 증빙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당혹감에 등에서는 식은땀 한 줄기가 흐를 것이다. 한글 시험지는 한글을 안다고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한글로 적힌 한국말, 한국 문화, 한국 사회를 아는지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글은 우리 삶의 흔적을 적어 내는 문자이다. 위조된 여권사진으로도 속일 수 없는 삶의 정체성을 어느 국경의 한국말 시험지로 다시 한 번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