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97명이 축구장에서 압사한 영국 힐스버러 참사에 대해 영국 경찰이 34년 만에 사과했다. 영국경찰청장협의회와 경찰대학은 최근 성명을 내고 “경찰의 실패가 비극의 주요 원인”이라고 인정했다. 실제로 관리는 부재했다. 축구협회는 ‘경기시간 15분 전까지 오라’고 안내했고, 경기시간이 임박해 입장 못한 이들이 들끓자 경찰서장은 문을 열어젖혔으며, 입석 관중이 짓눌리는데도 유입을 통제하지 않았다. 구급차 진입을 막는 오판도 있었다. 경찰의 가장 추악한 과오는 ‘술에 취해 밀려들어온 과격한 축구팬 탓’으로 돌리려 사망자 음주 검사와 전과 조회를 하고 언론에 거짓 정보를 흘리고 현장의 조사보고를 대거 수정한 점이었다.
□ 이 사건은 리버풀의 반(反)대처 정서에 일조했다.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강경한 석탄산업 구조조정과 노조 탄압으로 리버풀의 쇠락을 부추겼는데 힐스버러 참사 때 경찰을 옹호했다. 1990년 첫 진상조사에서 희생자들은 폭도로 간주됐고 유족들은 억울함을 호소해도 ‘그만 좀 하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사고 발생과 은폐의 전모는 2012년 힐스버러 독립조사위원회의 보고서에서 드러났다. 2016년 법원도 경찰 책임을 인정했다. 경찰의 사과는 그러고도 7년이 지나서야 나왔다. 너무 늦은 사과에 유족단체는 “극도로 실망스럽다”고 했다.
□ 서울 도심에서 159명이 사망한 이태원 참사가 이에 비견되는 것이 착잡하다. 유사점은 관리·통제의 부재로 짧은 시간에 다수가 압사한 사고 구조뿐만 아니다. 사망자를 대상으로 마약 검사를 시도했던 검사들, 현장 도착 시간을 허위로 기재한 경찰서장과 참사 당일 행적을 조작한 용산구청장, 주무 장관에게 책임을 묻기는커녕 도리어 두둔하는 대통령까지 판박이다.
□ 이러다 사건 마무리에 수십 년이 걸린 일마저 답습하는 게 아닌지 두렵다. 미흡했던 이태원 국정조사 후 독립적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이 제기됐고, 진작 사퇴했어야 마땅한 이상민 장관 탄핵이 아직도 논의 중이다. 정부가 책임 모면에 급급해 유족들에게 한을 남기고 너무 늦게 사과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