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이란에서 히잡을 계기로 시작된 반정부 시위가 당국의 강경한 진압과 경기침체 등이 맞물려 잠잠해진 모양새다. 대규모 시위는 줄었지만, 여성들의 '조용한 반란'은 계속된다. 히잡 없이 당당히 바깥으로 나서는 방식의 시민 불복종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이란에서 조직적인 시위가 줄어들고 시위대의 군중은 더 조용한 형태의 반란에 거리를 내줬다"라고 보도했다. 조직적인 대규모 시위는 드물어졌지만, 그 빈자리는 여성들이 채우고 있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는 수천 명의 여성들이 머리를 가리지 않고 길을 걷는 등 히잡이 없는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히잡 시위에 참여했던 한 30대 여성은 "두렵지 않은 건 아니다"라면서 "머리를 가리지 않는 것으로 '연대'를 보여주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라고 전했다.
이란의 반정부 시위는 지난해 9월 여성 마흐사 아미니(22)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구금됐다 사망하면서 시작됐다. 하산 로하니 대통령 시절(2012~2021년)엔 히잡 단속이 심하지 않았지만, 이슬람 성직자 출신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 취임 후 '히잡과 순결 칙령'이 발표되는 등 분위기가 바뀌던 시점이었다. 그의 석연치 않은 죽음에 시위대는 '여성·생명·자유'라는 구호를 외쳤고,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의 사진을 밟는 등 반정부 시위로 번졌다.
WSJ은 5개월 간 타올랐던 시위의 불씨가 사그라진 원인으로 먼저 ①정부의 강경 진압을 들었다. 이란 정부는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참가자를 연달아 처형하는 등 시위를 가혹하게 다뤘다. 인권단체는 500명 이상의 시위대가 사망했다고 추산한다.
②이란 경제의 악화도 시위대 규모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시위 기간 이란은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이란 리알화 가치도 급락,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경제난은 시위를 불붙게 하나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이란에서 통역사로 일하는 한 활동가는 "사람들은 아이들을 먹일 방법을 궁리하느라 시위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다"라고 말했다.
③정권 교체를 바라는 시위대를 뭉치게 할 '구심점'이 없었다는 점도 동력 약화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1979년 이란 혁명에서는 프랑스 망명 중이던 아야톨라 호메이니라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정치적 신념의 이란인들이 집결했다. 지금 이란인들이 원하는 정치체제는 각기 다르다. 지난해 3월 네덜란드의 연구단체 가만의 조사에 답한 이란인의 34%는 성평등한 공화국을, 22%는 이슬람 공화국을 선호했다. 19%는 입헌 군주제를 원했다.
"많은 이란인이 현 체제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으나 반란이 지속 가능할 것이라는 결론에도 이르지도 못했다."
이란 사회역사학자인 윌리엄앤드메리대학교의 페이먼 자파리 조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전문가들은 히잡 시위가 이란의 정권을 무너뜨릴 국가적인 파업이나 대규모 시위로 번질 충분한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히잡 시위의 '1막'은 마무리되지만, 시위가 남긴 유산은 분명하다. 몇 달간의 싸움은 적지 않은 여성들에게 히잡 착용을 "부당하다"라고 여기게 했다. 청소년과 20대가 주축이던 시위였던 만큼 이슬람 공화국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일상 속 항의는 계속될 전망이다. WSJ은 "불만의 불씨가 계속 타오르는 이상 시위는 다시 불붙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