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신앙은 공동체 신앙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우리 마을이 건강하게 잘 살기를 기원하는 거죠. 이처럼 마을이 함께하는 문화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 인간 소외, 고독사와 같은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최명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국립민속박물관이 최근 충청권 168개 마을의 ‘마을신앙’ 현황을 조사한 보고서를 내놨다. 연구자 70여 명이 지난해 정월대보름을 전후해 진행했던 마을신앙 제사(동제)를 직접 관찰해 내놓은 결과물이다. 박물관 인력 이외에도 지역 민속학자 50여 명이 참여한 이번 조사는 도 단위 지역의 마을신앙 현황을 그물처럼 훑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보고서에는 주민들의 풍부한 증언과 각 마을 동제의 유래 및 진행 방식이 기록돼 있다. 보고서 3권에 담긴 사진만 1,500여 장에 달한다. 박물관은 앞으로 3년간은 제주·전라·경상·강원·수도권까지 조사해 추가로 보고서를 낼 계획이다. 이번 연구를 기획총괄한 최명림(51)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동제야말로 한국 공동체 문화의 뿌리”라고 강조했다. 지역을 막론하고 오래된 마을이면 온 주민이 힘을 합쳐서 당산나무나 장승, 산신 등 신체(신의 모습)에게 제사를 지내는 전통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충남 영곡2리 ‘행단제’의 경우 그 역사가 500년에 가깝다. 최 학예사는 “동제는 단오나 칠석에 올리기도 하지만 대개는 정월대보름에 올린다”면서 “그해에 보름달이 가장 먼저 뜨는 날에 풍년을 기원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동제 방식은 유교식, 무속식, 불교식 등 여러 방식이다. 신체(신령을 상징하는 물체) 종류도 산신제(산신), 장승제(장승), 당산나무제(당산나무), 탑제(탑), 행단제(은행나무) 등 다양하다. 충청권에서는 대체로 제사와 비슷하게 유교식으로 지내는 곳이 많다. 여러 습속들이 섞인 곳도 있다. 동제는 대개 정월대보름 전날 밤 늦게 시작돼 다음 날 새벽에 끝난다. 마을 사람들이 제사 음식을 짊어지고 초저녁에 산을 올라서 밤이 늦어서야 하산한다.
최 학예사는 "동제가 종교이자 또 마을을 결집시키는 의례로서 현재도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부터 마을을 지켜달라” “오미크론이 마을에 들어오지 않게 해달라”는 내용의 축문이 등장하기도 했다. 조사에 참여했던 신소연(32) 학예연구원은 “일부 마을의 경우, 귀농한 젊은 사람들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단절됐던 전통을 되살린 곳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 지역에서 동제가 앞으로도 현재처럼 유지되리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농촌 지역에서는 고령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제사 절차가 간소화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또 안전사고를 우려해 제사 장소를 산에서 산 아래로 바꾸거나 제사 시간을 낮으로 변경한 마을도 많았다. 최 학예사는 “제관들의 나이는 60, 70대가 대부분" 이라며 "현재 전수조사를 진행하지 않아 통계를 내기는 어렵지만 전체적으로 마을신앙 유지가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연구자들은 동제의 명맥을 잇기 위한 지자체의 지원도 요청했다. 최 학예사는 “지자체가 마을에 10만 원이든, 20만 원이든 지원해야 한다"며 "그래야 마을이 보다 적극적으로 동제를 이어 나갈 동력이 생길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