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쓰는데 나만 벗을 엄두가 안 나네요.”
30일 오전 서울지하철 5호선 신길역. 월요일 출근길을 맞아 승객들이 개찰구로 물밀 듯 쏟아졌다. 10분간 승강장에 들어온 승객만 200여 명. 마스크를 쓰지 않은 맨얼굴은 2명에 불과했다. 시민들은 마스크를 벗고 거리를 활보하다가도 역 출구에 다다르면 서둘러 챙겨 썼다.
일부 필수시설을 제외하고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840일 만에 해제된 이날 ‘노 마스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3년 가까이 마스크 착용이 습관이 된 영향으로 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감염 우려와 추운 날씨 등 현실적 이유로 “아직은 이르다”는 반응도 많았다.
마스크 해제 효과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 공간은 학교다. 하지만 등굣길 풍경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날 개학을 맞아 서울 광진구 광장초 통학버스에서 내린 학생들은 마스크를 쓴 채 교문을 지났다. 한 학급에선 1교시 수업종이 울린 후 담임교사가 “원하는 친구들은 마스크를 벗어보자”고 했지만 6, 7명은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학교 측도 등굣길 발열체크와 급식 2부제를 실시하는 등 여전히 감염병 공포를 경계했다.
지하철 승강장에서도 얼굴 전체를 드러낸 시민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서 만난 이서영(28)씨는 “어차피 지하철을 타면 다시 써야 하니 잠시 벗는 게 번거롭다”고 했다. 최모(30)씨도 “출근길에 사람이 붐비기는 지하철 안이나 밖이나 마찬가지”라며 “코로나19 재감염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운동은 호흡이 중요해 헬스장에선 마스크 해제를 반길 법했다. 그러나 상황은 비슷했다. 이구동성으로 당장 마스크를 벗기엔 다른 사람의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 소재 헬스장에서 만난 김모(28)씨는 “마스크를 쓰고 운동하면 땀이 배어 찝찝하다”면서도 “서로 조심스러운 탓인지 마스크를 벗는 사람은 없다”고 전했다.
마스크 착용 필수시설인 병원과 약국에서도 별다른 혼란은 없었다. 경기 수원의 한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조무사 이모(28)씨는 “환자들이 모두 착용 의무를 지켜 한 건의 실랑이도 없었다”고 말했다. 경기 용인의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고모(27)씨도 “내원객 한 명이 깜빡 마스크를 쓰지 않고 들어왔지만 직원 안내에 순순히 응했다”고 했다.
공연ㆍ유통업계도 전면적인 노 마스크 시행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환기가 어려운 ‘3밀(밀집ㆍ밀접ㆍ밀폐)’ 환경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대형 콘서트홀은 마스크 미착용자를 제지하지는 않되 안내문 등을 통해 착용을 적극 권장하고, 공연장 근무자는 착용 의무화를 유지하기로 했다. 홈플러스도 매장과 물류센터 직원은 당분간 기존처럼 마스크를 쓸 계획이다.
물론 해방감을 만끽하며 마스크 해제를 반기는 목소리도 나왔다. 서울 동대문구 대형백화점에서 마스크를 벗고 쇼핑을 즐기던 이모(50)씨는 “마스크를 쓰면 목도 아프고 침 냄새로 불쾌했는데 너무 홀가분하다”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와 맞물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정상영업을 재개한 은행 방침엔 환영 일색이었다. 서울 동대문구 하나은행 휘경동 지점에서는 오전 9시가 되기도 전 은행 입구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손님이 여럿 보였다. 정삼분(77)씨는 “남편을 간호해야 해 아침에만 짬을 낼 수 있는데 일찍 연다고 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인터넷뱅킹이 어려운 노인들에겐 희소식”이라고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