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대 정원을 늘리기 위해 칼을 다시 뺐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9일 가진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지역 의사 부족과 (외과ㆍ산부인과 등) 필수 분야 의사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해 의사 인력 공급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코로나19 안정화 선언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의대 정원 문제가 이슈화되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고 조심스러운 반대 입장을 표했다.
현재 의대 정원은 의학전문대학원을 포함해 40개교 3,058명으로 2006년 이후 18년째 묶여 있다. 이 때문에 외과ㆍ청소년소아과ㆍ산부인과 등 필수의료를 중심으로 전국 곳곳에서 진료가 제대로 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 의사 숫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과 비교하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2020년 조사에서 한국의 임상 의사 수(한의사 포함)는 1,000명당 2.5명으로 OECD 평균 3.7명에 한참 못 미친다. 멕시코(2.4명) 다음으로 의사 수가 적다. 의학 계열 졸업자 수는 10만 명당 7.2명으로 OECD 평균(13.2명)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은 의대 정원이 5,000명이 넘어야 중ㆍ장기적으로 수요 공급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보다 2배 가까운 의대 졸업생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도 거들었다. 보사연은 최근 2019년 기준 의사 1인당 업무량 수준이 유지된다면 2025년엔 5,165명, 2030년엔 1만3,208명, 2035년에는 2만5,300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특히 2035년에는 내과·소아청소년과·신경과 등을 포함한 내과계가 1만757명, 외과·정형외과·산부인과 등을 포함한 외과계는 7,688명, 마취통증의학ㆍ병리학 등 지원계 5,916명, 일반의 1,112명이 부족하고 예방의학과는 174명이 초과 공급될 것으로 보사연은 예측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학년도부터 10년간 매년 400명씩 모두 4,000명을 증원하겠다는 의대 정원 확대 계획을 내놓았지만 의료계의 극심한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이렇듯 의사가 턱없이 부족한데 의대 정원은 왜 늘리지 못할까. 김진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보건의료위원회 위원장(서울대 간호대 교수)은 “의사단체가 의사 수가 적은 걸 이용해 권한을 독점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따라주지 못해 물건값이 자꾸 올라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모든 의대 졸업생에게는 전공 선택 자유가 있기에 의대 정원을 확충해도 10~15년 후 필수의료 분야 인력 확보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열악한 진료 환경을 우선적으로 개선하고, ‘피성안’(피부과 성형외과 안과) ‘정재영’(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등 인기 진료과보다 외과·산부인과 등 비인기 필수 진료과의 의료 수가(酬價)를 크게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필수의료와 공공의료 분야의 인력 부족, 지방 의료 인력 부족 등의 여러 문제들은 우선 의사 인력을 늘리지 않고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게 현실이다.
수익이 높은 진료과 쏠림 현상은 필수의료 수가 인상, 진료 과목별 정원 조정, 일정 기간 지방 근무를 의무로 하는 공공의대 설립 등 다양한 보완책이 필요하다.
몇 년 전 설 연휴 밤샘 근무를 하다가 순직한 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페이스북에 남긴 글을 옮긴다. “우리나라에 의사가 많다는 걸 의사 말고 누가 동의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