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태 전략: 왜 '실사구시'인가?

입력
2023.01.30 00:00
26면

편집자주

국제시스템이 새로운 긴장에 직면한 이 시기 우리 외교의 올바른 좌표 설정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40년간 현장을 지킨 외교 전략가의 '실사구시' 시각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칼럼 연재로 되새겨 보는 '실사구시' 의미
정부 수립 이후 이어진 외교의 '실사구시'
윤 정부의 '인태전략'도 시대에 맞는 선택

한국일보로부터 월례 칼럼에 기고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시작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고정 칼럼이므로 제목을 정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 대안 중에 이를 '실사구시(實事求是)'로 정하기로 마음먹었다.

왜 '실사구시'인가? 이 사자성어의 사전적 의미는 '사실을 얻는 것에 힘쓰고 항상 참 옳음을 구한다'로 풀이되고 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그에 따른 실천은 많은 사람이 실질적으로 이로운 결과를 얻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쉽게 공감할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도 그렇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실천적 행동 지침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이것은 필자가 오랫동안 일해 온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유념해야 할 지침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지난해 말 정부에서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용해 본다.

1948년 이후, 우리 정부는 주어진 시기의 국제 정세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그에 따라 안보와 경제 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 외교 정책의 큰 방향을 정하고, 실천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고 생각한다.

한국전쟁의 참담한 전화를 겪은 이승만 대통령은 소극적인 미국을 설득하여 미국과 상호 방위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것은 비단 안보를 확보한다는 의미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냉전의 한가운데서 자유민주주의, 시장 경제, 법치주의, 즉 '규범에 기초한 국제 질서'에 따라 국가를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국제 사회에 대한 선언이었다. 이 선언은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라는 세계가 주목하는 발전의 기초가 되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1990년대, 냉전이 와해되고 대부분 공산주의 국가들이 개혁과 개방에 나서게 되었다. '규범에 기초한 국제 질서'는 전 세계로 확장하게 되었고, 경제는 또 한 차례 '세계화'의 시기를 맞았다. 우리 정부는 '북방정책'을 선언하고 구 공산권과의 관계 정상화에 나서게 되었다. 이 선언은 외교의 정상화와 함께 괄목할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1990년 6,600달러에 불과하던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현재 무려 3만5,000달러를 넘는다. 우리나라는 '규범에 기초한 국제 질서'의 가장 큰 수혜자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우리는 이 '질서'가 큰 도전을 받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작년 2월 '한계가 없는' 협력을 약속하였고, 러시아는 곧이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였다. 세계는 이제 '민주 국가와 권위주의 국가'로 갈라져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고, 이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에 새로운 안보와 경제의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지적한 대로 국제 관계가 '역사의 변곡점(Zeitenwende)'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28일 정부가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은 이러한 현실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전략'은 '최근 인태 지역 내 자유, 평화, 번영을 위협하는 복합적인 도전이 증대되고' 있고,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자유, 법치주의, 인권 등 보편적 가치가 도전받고 있어 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그 추진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에 기초하여 '전략'은 9개의 중점 추진 과제를 제시하는데, 그 첫 번째가 '규범과 규칙에 기반한 인태 지역 질서 구축'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70여 년간 '규범에 기초한 국제 질서'에 힘입어 안보를 유지하고 그 기초 위에 괄목할 산업화, 민주화를 이루었다. 그러한 질서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시대에 정부가 역내와 역외 주요 국가들과 함께 이러한 '질서'의 유지와 강화를 우리 외교·안보 정책의 근간으로 제시한 것은 '실사구시'에 부합한다.



안호영 전 주미대사·경남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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