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도 폐업 못하는 목욕탕의 속사정… "철거비만 수천만원"

입력
2023.01.19 09:30


"다른 가게야 집기 빼고 짐싸서 나가면 그만이지만, 목욕탕 폐업은 따질 게 한두 개가 아니에요. 상하수도, 보일러, 타일까지 다 큰돈 들여 지은 시설인데, 그걸 다 떼려면 돈이 많이 들겠죠. 떼낸 시설을 폐기하는 데 또 비용이 들잖아요."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 목욕탕 주인

[목욕탕이 사라졌다] 목욕탕 건물이 인기없는 이유

목욕탕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파장을 가장 세게 얻어맞은 업종이다.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이후 3년 간 전국에서 1,069곳의 목욕탕이 사라졌다. 사라진 대부분의 목욕탕은 '목욕' 기능만 갖춘 동네대중탕이다. 헬스장 내 목욕탕, 대형 스파시설(찜질방 포함), 1인용 세신샵 등 목욕과 다른 기능을 결합한 복합 시설은 새로 문을 연 곳도 많다.

그러나 다른 자영업 업장과 달리 독특한 구조·시설을 갖춘 목욕탕은 문을 닫는 일도 쉽지 않다. 대형보일러, 개인샤워기, 냉탕, 온탕, 사우나룸을 갖춘 목욕탕을 도대체 어떤 가게로 재활용할 수 있겠는가? 개업에 든 돈 못지 않게 폐업에도 큰돈이 드는 이유다.

김수철 한국목욕업중앙회 사무총장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목욕탕은 업종 특성상 폐업을 하기 마땅치 않다"며 "폐업 통계에 잡히지 않지만 사실상 휴업 상태인 사업장이 많다"고 운을 뗐다.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해 폐업 신고를 늦추고 있을 뿐, 영업을 이미 중단했거나 수입이 0원에 가까운 사업장이 많다는 설명이다.

실제 한국일보가 서울의 동네목욕탕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도 정부 인허가 데이터엔 '영업'으로 분류돼 있지만 문을 닫았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 사업장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2018년과 2019년 목욕탕 조사를 진행했던 이인혜 한국민속박물관 학예관리사도 "오래된 곳을 찾아가 보면 거의 다섯 곳 중 한두 곳은 문을 닫았다"며 "간판만 있는 형태의 목욕탕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보일러·배관·굴뚝까지…"철거에 거의 1억원"

고정수입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목욕탕 주인들이 폐업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업종보다 압도적으로 철거비용이 높아서다. 목욕탕 시설을 그대로 인수해 목욕탕을 새로 운영할 사람이 나타나면 다행이지만, 사양산업에 뛰어들 무모한 도전자는 거의 없다. 결국 건물 안팎 모든 시설을 뜯어내야 한다. 사우나나 욕탕은 빙산의 일각. 눈에 보이지 않는 보일러실과 배관시설까지 있다. 굴뚝이 달린 옛날식 목욕탕의 경우 별도의 철거비용이 발생한다.

업주들은 대체로 이 철거비용이 수천만 원에서 1억 원에 달한다고 말한다. 목욕탕 폐업을 고려하고 있는 업주 A씨는 "이 목욕탕(지하 1층~지상 3층 규모) 시설을 뜯어내려면 적어도 7,000만~8,000만 원은 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목욕탕 주인 B씨는 "시설을 뜯어내는 데만 거의 1억원이 드는데, 다시 세를 내놓으려면 리모델링까지 해야 한다"며 "식당이었다면 주방만 빼면 된다지만 목욕탕은 보일러, 물탱크 철거에도 전문가를 불러야 한다"고 토로했다.

목욕탕에 딸린 식구들 사정도 고려해야 한다. 함께 일하는 이발사나 목욕관리사(세신사)가 바로 그들이다. 오랫동안 함께 일한 정도 정이지만, 그들 역시 보증금이나 월세를 목욕탕 주인에게 내고 일하는 자영업자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인기 없는 매물

새 운영자를 찾기도 불가능하고, 따로 철거하기도 어려운 건물. 그래서 목욕탕은 부동산 시장에서도 인기 없는 매물에 속한다. 건물 전체를 허물고 신식 상가건물이나 빌라를 올리려는 건설사업자가 아닌 이상, 목욕탕은 쉽게 팔리지 않는다. 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의 이주현 선임연구원은 "목욕탕은 다른 매물과 비교해 권리상 하자가 많아 자칫 송사에 휘말릴 수 있다"며 "이발소, 매점 주인 등과의 금전 거래가 마무리됐는지, 급탕·기계시설에 대한 유치권은 포기됐는지 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재건축·재개발 지역에 묶여 어쩌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재정비 사업이 빠르게 진행된다면 보상금도 받고 좋겠지만, 재건축·재개발 진행이 예정대로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다. 아파트 단지 내 목욕탕의 경우, 건물이 목욕탕 주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땅은 아파트 공유지분으로 설정돼 있어 마음대로 건물을 새로 짓거나 업종 변경을 할 수도 없다.


투자금을 생각하면 거액이 들어가는 리모델링도 곤란하다. 동대문구 전농동의 김모(48)씨는 부친에게 물려받은 목욕탕을 살리기 위해 씨름하다, 어쩔 수 없이 목욕탕 구조를 그대로 활용한 실내 포장마차를 열었다. 그는 "코로나 발생 이후 실질적인 수입이 '0'이었고, 철거비도 만만치 않아 이 방법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가 만난 목욕탕 업주들은 "아직 운영 중인 동네목욕탕이 있다면 십중팔구 그저 힘들게 버티고 있는 중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취약계층을 위해 정부가 지은 공공목욕탕이나, 복지관 헬스센터 시설은 오히려 동네목욕탕의 경쟁자다. 김수철 사무총장은 "일본은 목욕탕이 없어지면서 생길 수 있는 시민들의 불편을 막기 위해 목욕탕에 수도세 등 지원을 해주지만, 한국은 그냥 시장에 맡겨놓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목욕탕이 사라졌다' 몰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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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청계천 배달하며 품었던 목욕탕의 꿈, 이제 놓아주려 합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11116070002790

②목욕업 최전성기는 2003년... 통계로 본 대중탕 흥망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11115240002597

③망해도 폐업 못하는 목욕탕의 속사정… "철거비만 수천만원"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11611240004703

④때 밀어 떼돈 벌던 시절이 있었다... 영광의 세월 지나온 세신사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11611170002245

⑤공중위생 덕에 흥한 목욕탕 '팬데믹 위생' 탓에 사라진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11617130001082

최동순 기자
오세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