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학교에서 선생님을 되찾을까?

입력
2023.01.0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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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적어도 열두 명 이상의 담임 선생님을 만났을 것이고, 저마다 선생님과 얽힌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내 모든 담임 선생님의 이름을 기억한다. 학부모 상담에 온 엄마가 내 단점을 꼬집을 때, 내 장점을 들어 일일이 두둔해 주시던 생애 첫 담임이셨던 정명애 선생님, 열 살도 안 된 코흘리개 우리를 앉혀 놓고 "고양이를 그리고 싶다면 호랑이를 그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라며 꿈을 크게 가지라고 호통을 치시던 2학년 때 최규철 선생님, 집 안에 붉은 압류 딱지가 붙었던 그해 실업계 고등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을 때 자기 일처럼 가슴 아파하시며 너는 어떻게든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해야 한다고 말리시던 중3 때 권태락 선생님… 두고두고 그립고 고마운 스승들이셨다.

어린 나에게 용기를 주고, 꿈을 품게 하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나를 믿어주신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과연 오늘의 내가 있었을까.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 중고교 시절에는 낳아준 부모보다도 더 힘이 되어주셨던 선생님들이 계셨기에, 불안하고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었다. 내가 경험했던 20세기 학교를 오늘날의 학교와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한지 모르겠다. 하지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함없이 지켜져야 하는 가치가 있지 않은가 싶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또래들 간 갈등이 선생님의 중재로 해결이 되지 않는 오늘날의 세태를 보면, '선생님'이 '스승'이라기보다 '교사'로 여겨지는 듯해 안타깝다. 학생과 학부모도 그러하지만, 선생님마저도 자신을 그저 '교과목을 가르치는 직업인'으로만 여기고, 그 역할만 하는 것이 차라리 '안전하다'라고 여기는 것 같다. 아이들의 인생에 관심을 두지 않으려 노력하는 선생님을 아이들은 나중에 어떤 이름으로 기억할까?

아이의 세계가 가정과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 학교라는 넓은 세계로 확장되면서 선생님과의 관계, 그리고 또래와의 관계가 성장과 성숙에 있어 매우 중요해진다. 학교는 단순히 '지식의 전수'가 일어나는 곳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만나는 여러 사람 속에서 다양한 문제를 경험하고, 크고 작은 실패와 좌절을 겪고, 실수와 화해, 용서와 반성을 반복해서 경험하고, 그 경험을 통해 배우고 익히며 한 사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로 진입할 준비를 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선생님이 '선생님'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과 그 부모를 상담하거나 학생과 부모에게서 받은 신체적·언어적 폭력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교사를 상담하게 될 때, 지금 우리 아이들의 학교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탄식이 절로 나오곤 한다. 학교폭력 사건의 발생 시기가 초등 저학년까지 내려온 것은 이미 오래되었고, 부모들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또래 간 갈등이나 교사와의 갈등을 학교 안의 사람들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학교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개입하면서 사건은 더욱 커지고, 경찰과 검찰의 힘을 빌려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어 길고 긴 법적 다툼을 한다. 정작 학교 안 사람들인 선생님도 아이들도 주변인이 되어버리고, 학교 밖 사람들 간의 분쟁이 되어버린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선생님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정미 서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