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기자회견장이 있는 국회 소통관 안내 데스크 앞에서 임시 출입증을 받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있던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봤다. 참사가 없었다면 이들은 평생 살면서 서로 마주칠 기회나 있었을까. 검은색 롱패딩 차림으로 서먹하게 인사를 나누는 유가족들 모습에서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재난의 무차별함을 새삼 실감했다.
이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10월 29일 참사 현장에 우연히 가족이 있었다는 것뿐. 그 밖의 사회경제적 배경은 난수표에서 추출한 듯 천차만별일 것이다. 서로 접점이 없어 연락처를 구하기 어려웠던 탓에 유가족 협의회도 참사 40여 일이 지난 12월 10일에야 뒤늦게 발족했다.
이렇게 모인 임의의 조합이 일부 뉴스 기사 댓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유독 염치가 없고, 무절제하거나 ‘좌파 세력’ 선동에 쉽게 넘어가는 특성을 국민 평균보다 더 갖고 있으리라 단정할 근거는 없어 보인다.
그런 유가족들이 나날이 투사가 되어간다. 이들의 강한 항의로 27일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가 몇 시간 동안 멈춰서기도 했다. 야당 의원들이 대통령실과 정부 책임을 추궁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맞불 차원에서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닥터카 이용 논란을 집중 조명했는데, 그러자 유가족들은 “국민의힘이 신현영 문제만 너무 물고 늘어진다”고 성토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성난 유족들 앞에서 쫓기듯 회의장을 나와야 했다.
여러 배경의 사람들이 동시에 투사로 변해가고 있다면 그들의 됨됨이가 아닌 처한 환경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이치에 맞을 것 같다. 유가족을 근거도 없이 몰염치한 사람들로 매도한 일부 정치인들의 후벼 파는 듯한 막말은 유가족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예의는 갖췄을지 몰라도 함께 울어줄 생각은 없다는 듯 거리를 두는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상민 장관의 묘한 차분함도 유가족을 낙담케 한다.
여권 인사들의 경계심에는 뿌리가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정부가 야권의 정치 공세에 너무 무르게 대응해 결국 탄핵의 빌미를 줬다는 트라우마가 있다고 한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눈물 흘리며 참사를 공식 사과했고 해양경찰 전격 해체에 나서는 등 나름 파격 조치를 했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은 팽목항에 내려가 유가족들과 136일간 함께 지냈다. 이런 노력에도 남은 것은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 같은 음모론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 여권 주류의 인식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유가족에 대한 정부·여당의 방어적 태도는 민-민(民-民) 갈등으로 사태를 몰아가고 있다. 참사에 책임 있는 정부가 아픔에 공감하려 하기보다 밀어낸다고 느낄 때 정부를 원망하는 유가족의 목소리는 뾰족해질 수밖에 없다. 원망이 커질수록 보수 지지층은 윤석열 정부를 향한 위협으로 느끼고 거칠게 막아서게 된다. 유가족을 공격하는 악성 댓글과 희생자 분향소를 에워싼 극우 유튜버 행태의 배경에는 이런 반작용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삭막한 참사 후 풍경은 참사 자체의 충격에 이어 우리 사회 밑바닥을 거듭 확인시키며 환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누가 작정하고 만든 구도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정부·여당이 이 사태를 방치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비판하는 지난 정부의 국민 갈라치기를 되풀이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