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키우는 게 죄스러운 나라

입력
2022.12.26 04:30
26면

출근 시간 30분 전 걸려 온 전화. 남자 부원이다.

“부장, 아침부터 죄송합니다. 아이가 갑자기 아픈데 연차를 써도 될까요. (중략).”

죄를 고백하듯 머뭇머뭇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상대의 낯빛이 그려진다. 최대한 짧고 선명하게 답한다. “당연하지, 아이부터 챙기렴.” 전화를 끊고 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오늘 한 명이 빈 자리를 어떻게 메우지.’ ‘아이 상태라도 살뜰히 물어볼걸.’ 의식의 범람을 막을 순 없는 노릇이라 시대착오적 생각도 흩날린다. ‘애 엄마는 뭐하지?’ 화들짝 다른 자아가 나무란다. ‘육아는 부모 공동 몫이야!’

아이들은 예고 없이 아프다. 직장에 매인 부모의 사정 따위 봐주지 않는다. 그럴 때면 아이에게도, 회사에도, 아니 주변 모두에게 죄인이 된다. 키우고 있어서 안다. 아내의 수고와 장모의 노동에 기대 남보다 아쉬운 소리를 덜했을 뿐이다.

부장을 맡은 이후 상호 신뢰 아래 작은 실험을 하고 있다. 아이가 아프거나 아이에게 일이 생기면 먼저 아이부터 챙긴 뒤 보고하고, 돌봄이 필요하면 재택근무를 하거나 휴가를 쓰라고. 반년이 지났지만 부 업무가 지장을 받은 적은 없다. 전화기 너머 아이들 소리가 들려도 개의치 않는다. 다만 엄마 부원들에게만 귀띔한 일이라 아빠 부원에겐 미안하다. 공동 육아라는 대의가 이 땅에 단단히 뿌리내리길 소망한다.

아이의 병치레는 육아의 일각이다. 우리의 육아 환경은 장애물투성이다.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할 이유가 압도한다. 아기 때부터 학원으로 내모는 승자독식 교육, 능력주의로 포장된 부의 대물림과 빈부 격차, 사는 곳이 아닌 ‘사는 것’으로 변질된 집, 국가 경쟁력의 기치 아래 영혼을 갈아 넣는 장시간 노동, 여성의 경력 단절과 보이지 않는 차별, 어린이보호구역과 학교에서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불안전, 약자 혐오, 연예인을 앞세운 매스컴의 육아 판타지 등. “아이를 낳는 건 무책임하다”는 젊은 세대의 항변을 허투루 들을 수 없는 지경이다.

올해 주요 경제 뉴스를 살펴봐도 고단한 육아와 출생 기피의 현실은 도드라진다. 당장 내년 우리 경제는 3고(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파고로 더 어려워질 것이다. “빚내서 집 사라”던 박근혜 정부, 반(反)시장 정책에 따른 집값 폭등으로 영끌족을 양산한 문재인 정부에 이어 이번 정부는 시장 연착륙을 내세워 다주택자에게 집 살 기회를 더 열어 주고 있다.

화물연대 파업은 고민거리를 남겼다. 불법을 용인해선 안 되지만 노동의 가치도 중요하다. “국가 경제를 멈추게 했다”는 이들의 파업은 역으로 안전을 위협받고 밤낮으로 일한 이들 덕분에 그간 우리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너는 자라서 하지 말라”고 아이에게 가르치게 되는 현실은 슬프다. 한쪽으로 쏠릴수록 사건의 다른 면을 고민해야 건강한 사회다.

정부는 저출생 해법으로 부모 급여를 곧 지급한다. 돈이 능사가 아니다. 지난 16년간 280조 원 규모의 예산을 쏟아붓고도 끌어올리지 못한 출산율이 반면교사다. 오히려 “미래 세대를 위해” 추진한다는 3대 개혁(노동ㆍ교육ㆍ연금)에 눈길이 간다. 육아의 숱한 장애물을 걷어 내고 입체적 대안을 마련하기 바란다.

그와 별개로 조직의 중간 이상인 우리는 육아 존중을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새해부터 함께해 보자. 그래야 세상이 바뀐다, 시나브로.

고찬유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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