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를 비롯한 주요 수출 업종이 내년 0%대 증가율에 그치며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는 기업들의 전망이 나왔다. 내년 경기가 본격적으로 침체에 빠진다는 관측과 함께 허리띠를 졸라매는 기업이 크게 늘어날 것임을 뜻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19일 공개한 '2023년 수출 전망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기업의 39.3%가 "내년 수출이 감소한다"고 판단했다. 수출 감소 응답 기업들은 ①높은 수준의 원자재 가격 지속에 따른 수출경쟁력 약화(45.7%) ②주요 수출 대상국의 경기 부진(33.9%) ③해상, 항공 물류비 상승 등 물류 애로(10.2%) 등을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반면 내년 수출이 올해 대비 증가한다고 본 기업(60.7%)은 ①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완화에 따른 교역 여건 개선(46.1%) ②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수출단가 상승(19.8%) ③생산 및 물류 차질 해소(17.6%) 등을 꼽았다.
그러나 이들 기업이 내놓은 내년 수출 전망을 평균으로 산출하면 올해 대비 0.5% 증가에 그친다. 수출을 통해 거두는 이익을 뜻하는 채산성이 올해와 비슷(53.3)하거나 악화(28.0%)해 수출 전망이 밝지 않은 것이다. 올해(11월 누적 기준) 수출 실적은 전년 대비 7.8% 증가에 그쳐, 지난해(25.7%)만 못 한 상황이다.
업종별로도 채산성이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큰 업종 중심으로 수출 전망도 어두웠다. 조사 대상인 12대 업종에서 채산성이 가장 떨어진다는 응답(40.7%)이 나온 전기·전자는 내년 -1.9%를, 석유화학·석유제품(28.6%)은 -0.5% 등으로 각각 역성장한다고 봤다. 전기·전자 업종은 수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컴퓨터, 이동통신기기 등으로 이뤄져 있어, 우리 경제에 가장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이어 채산성이 두 번째로 낮다(31.3%)고 본 철강도 내년 0.2% 소폭 상승에 그치고, 자동차·자동차부품(+0.9%), 일반기계·선박(+1.7%), 바이오헬스(+3.5%) 등도 소폭 성장에 머무른다고 내다봤다.
기업들은 수출 채산성 악화 요인으로 ①원유, 광물 등 원자재 가격 상승(54.7%) ②환율 상승에 따른 수입비용 증가(14.3%) ③금리 인상 등으로 인한 이자비용 상승(11.9%) 등을 꼽았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업황이 반등할 때까지 생산·투자를 줄여 버티겠다는 전략을 펴고 있다. 우선 공장 운영비·판관비 등 비용절감(35.6%)을 하고 채용 축소 등 고용조정(20.3%), 투자 연기 및 축소(15.3%) 등을 검토 중이다.
이런 유동성 확보 기조는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실시한 '2023년 기업 경영전망' 조사에서도 나타난다. 응답 기업들은 긴축경영의 실행 방안으로 '전사적 원가 절감'(72.4%), '유동성 확보'(31.0%), '인력 운용 합리화'(31.0%) 등으로 자금 확충을 해 버티겠다고 했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코로나19 위기 이후 한국경제 성장을 주도해 온 수출 증가세가 본격 꺾일 전망"이라며 "정부는 원자재 수입 관련 세제 지원 확대, 수출물류 차질 방지 등 우리 기업의 수출 실적 개선을 위한 환경 조성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번 조사는 매출액 1,000대 기업 중 12대 수출 주력 업종을 대상(150개사 응답)으로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9일까지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