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조사받은 박지원 "문 전 대통령·서훈 삭제 지시 없었다"

입력
2022.12.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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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조사로 수사 마무리 단계
문 전 대통령 직접 조사는 안할 듯
이대준씨 친형, 문 전 대통령 고소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국가정보원 첩보 보고서 삭제 혐의를 받는 박지원(80) 전 국정원장을 14일 소환했다. 박 전 원장은 “문재인 대통령 등으로부터 삭제 지시를 받은 적이 없고 국정원 직원들에게 삭제를 지시하지도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 이희동)는 이날 박 전 원장을 피고발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박 전 원장은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가 북한군에 피격된 뒤 서훈(68)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지시를 받고 자진 월북이 아니라는 보고서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혐의(국정원법상 직권남용과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를 받고 있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박 전 원장은 이대준씨 피격 직후 열린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한 뒤 국정원 첩보 보고서 등 46건을 삭제했다.

검찰은 이날 박 전 원장을 상대로 2020년 9월 23일 새벽 서 전 실장이 소집한 청와대 1차 관계장관회의에서 어떤 대화와 지시가 오갔는지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검찰은 박 전 원장이 노은채 당시 국정원장 비서실장에게 국정원 내 통신첩보 자료를 삭제하도록 지시했는지도 물었다.

박 전 원장은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박 전 원장은 검찰 조사에 앞서 취재진에게 “문재인 대통령이나 서훈 전 실장으로부터 어떤 삭제 지시도 받지 않았다”며 “원장으로서 국정원 직원들에게 삭제하라는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박 전 원장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검찰 주변에선 박 전 원장 조사로 수사가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이 서해 피격 사건의 최종 책임자로 지목한 서 전 실장을 이미 재판에 넘겼기 때문이다.

다만 '관계기관 보고를 최종 승인했다'고 밝힌 문재인 전 대통령 조사가 변수로 꼽힌다. 검찰은 문 전 대통령이 부당한 지시를 했거나 자료 삭제 과정에 개입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공안수사 경험이 풍부한 검찰 관계자는 “필요하면 서면조사는 하겠지만 문 전 대통령 참모들을 재판에 넘기는 수준에서 수사를 마무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대준씨 유족은 이날 문 전 대통령을 △직무유기 △허위공문서 작성 △직권남용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씨의 친형 이래진씨는 "(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안보라인에서 올라온 보고에 대해 지시·승인을 했다고 밝혔다"며 "그 지시와 승인이 국민을 위해 수행됐는지, 문제는 없었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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