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기간이 끝난 뒤 한참 지나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거창 민간인 학살 사건'(거창 사건) 피해자 유족들이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거창 사건으로 사망한 모자의 유족 2명이 제기한 국가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지법으로 돌려보냈다.
거창 사건은 1951년 경남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서 지리산 공비들이 경찰 등을 습격한 직후, 국군이 사흘간 지역주민 수백여 명을 사살한 사건이다. 사건 발생 40여 년 뒤인 1996년 1월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됐지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10년 진상규명 대상에서 거창 사건 유족들을 뺐다.
유족 A씨 등은 2017년 국가에 정신적 피해를 보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1·2심은 소멸시효를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했다. 국가배상법상 청구권은 불법행위라고 인지한 시점부터 3년(단기) 또는 불법행위가 있었던 날로부터 5년(장기)까지 유효하다. 진상이 규명되지 못한 과거사 사건의 경우 '불법행위가 있었던 날로부터 5년'이라는 소멸시효 때문에 뒤늦게 불법행위를 인지했어도 청구권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2018년 8월 과거사 사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권 소멸시효를 제한한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한 헌법재판소 결정을 근거로 사건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거창 사건은 시기와 내용 및 성격상 과거사정리법의 '1945년 8월 15일부터 한국전쟁 전후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뤄진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유서대필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강기훈씨와 가족이 낸 국가배상 청구소송에서도 같은 법리를 적용해 파기환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