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 직무집행법에 의하면 경찰관은 범죄의 예방과 제지 이외에도 위험 발생을 방지하거나 긴급한 구호가 필요한 경우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대법원은 이러한 경찰관의 조치 의무에 대하여 경찰관의 전문적 판단에 따른 합리적 재량에 맡길 수 있지만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경찰관이 권한을 행사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아니한 것이 현저하게 불합리한 경우에는 위법하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러한 경찰관의 직무집행 의무와 관련하여 몇 가지 민·형사 판례가 있어 소개해 보겠다.
사례1: 딸을 납치한 납치범이 딸의 휴대폰으로 연락을 하여 몸값을 요구하자 부모가 경찰에 신고하였다. 경찰이 딸의 휴대폰 위치 추적을 통하여 용의자가 타고 있던 차를 검문검색 하려고 다가가는 순간 용의자가 도주하여 딸을 살해하였다. 법원은 검문 과정에서 용의자의 도주 위험에 대하여 최소한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사례2: 아들의 여자 친구를 싫어하던 어머니가 전화로 싸우다가, 집으로 찾아온다는 여자 친구를 죽인다고 하면서 과도를 준비하자 아들이 경찰에 두 차례나 신고하였다. 경찰은 이 신고 직전에 있었던 가정폭력 신고와 동일한 사건으로 잘못 판단하여 즉각 출동하지 않았고 최초 신고 후 30분이 지나서 현장에 도착하였다. 경찰이 늑장 출동하는 사이 어머니가 여자 친구를 과도로 살해하였다. 법원은 두 신고의 발생 장소가 다름에도 동일 사건인지 면밀히 조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사례3: 성폭력 범죄로 징역 7년형을 받고 출소한 후 전자장치를 부착한 사람이 다시 성범죄를 저질렀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범인의 음모를 채취하여 DNA 검사를 의뢰하고, 인근 지역 우범자들의 사진을 제시하여 범인을 지목하도록 했으며, CCTV 확인 조치를 취하였으나 전자장치 피부착자의 위치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13일 후 다른 피해자에게 성폭력을 시도하다 반항하자 피해자를 살해하였다. 1, 2심 판결은 전자장치 피부착자의 위치정보를 확인하지 않은 것이 국가배상을 할 정도로 객관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국가배상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대법원은 이와 달리 현저하게 불합리하여 위법하다고 판단하였다.
한편 세월호 사고 현장에 먼저 도착했던 경비함 정장이 유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해경 지휘부의 업무상 과실에 대하여는 최근 1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되었다. 1심 재판부는 구조세력 현장 도착 전과 후로 나누어서 업무상 과실 인정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구조세력이 도착하기 전에는 해경이 세월호와의 교신 내용을 보고받기는 하였으나 선장, 선원과 연락이 되지 않아 세월호의 정확한 선내 상황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업무상 과실이 있다고 보지 않았다. 구조세력이 도착한 오전 9시 32분 이후에는 상황을 파악하고 조치를 취할 수 있었으나 구조 가능성이 있었던 오전 9시 50분경까지 선장이 거짓말을 하고 선원이 탈출하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구조를 하기 어려웠으므로 업무상 과실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경찰이 신이 아닌 이상 모든 범죄나 참사에 경찰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세월호 사건의 1심 재판부도 그와 같은 이유로 해경 지휘부의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경찰이 현장 상황을 판단할 수 있을 정도의 자료를 입수한 상태였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그 판단은 달라질 수도 있다. 이태원 참사에서도 당시 상황이 어떠하였는지, 경찰이 당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는지, 이러한 상황에서 경찰이 취하여야 할 조치가 어떠한 것이고 가능하였는지 등 여러 가지 사정들이 수사기관에 의하여 조사가 될 것이고 검찰이나 법원의 사법판단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