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침공으로 신음하는 우크라이나가 또 다른 위기에 직면했다. 바로 ‘인구 감소’다.
초토화된 삶의 터전을 피해 타향살이에 나선 국민은 벌써 800만 명에 육박하는데, 추가 탈출 행렬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언제 돌아올지도 미지수다. 인구가 국력과 직결되는 점을 감안하면, 전쟁이 끝나더라도 우크라이나에는 짙은 후유증이 남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12일(현지시간)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전쟁이 우크라이나 인구 문제를 악화시켰다”고 보도했다. 사실 우크라이나 인구 감소가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이미 전쟁 발발 전에도 고령화와 저출생은 큰 문제 중 하나였다.
구소련에서 독립한 1991년 5,200만 명 수준이던 우크라이나 인구는 10년 뒤인 2001년에는 4,850만 명으로 감소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인 지난해의 경우 2014년 러시아가 강제병합한 크림반도 거주민을 포함해 4,350만 명으로 집계됐다. 30년 만에 인구가 16% 넘게 줄어든 셈이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독일 등 서유럽으로 많은 사람이 이주한 데다, 한국처럼 출생아 수가 급감한 게 지난 30여 년간 우크라이나의 인구 감소 이유다. 지난해 우크라이나의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은 1.1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61명)이나 유럽연합(EU) 평균(1.48명)보다 낮았다.
설상가상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은 우크라이나를 인구 절벽으로 더 몰아세웠다. 당장 전장에서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군인과 시민들이 러시아의 포탄에 목숨을 잃고 있다. 이달 초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9개월간 자국 병사 1만2,000여 명이 전사했다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많은 사람이 전쟁을 피해 나라 밖으로 빠져나갔다는 점이다. 유엔난민기구는 우크라이나 해외 난민이 780만 명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인구 이동 중 최대 규모다.
얀 에게랜드 노르웨이 난민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러시아의 인프라 공격으로) 겨울철 추위에 직면한 우크라이나 난민 수십만 명이 또다시 유럽으로 밀려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엘라 리바노바 우크라이나 국립과학아카데미 인구통계연구소 박사는 현재 우크라이나에 3,400만~3,500만 명이 머물고 있다고 추산했다.
가까운, 또는 먼 미래에 평화가 찾아온다고 해도 피란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갈지도 명확하지 않다. 현재 유럽 각국으로 뿔뿔이 흩어진 난민 대부분은 여성과 어린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우크라이나 난민 어린이 대부분은 정착지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며 “전쟁이 길어질수록 이들이 새 보금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살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에 남은 사람들 역시 전쟁으로 높아진 위험과 불확실성 탓에 출산을 미루려는 경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출생률 저하 및 인구 감소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인 셈이다. 앞서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스대 연구진은 최악의 경우 우크라이나 노동 가능 연령의 성인과 아동 수가 각각 36%, 56% 줄어들면서 인구가 2,800만 명대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생산인구 감소가 국가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약화시켜 결국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인구가 줄어 ‘전쟁 이후의 삶’을 꾸리기도 쉽지 않다는 의미다. 우크라이나 프투카 인구·사회연구소 이리나 쿠릴로 연구원은 “전쟁으로 부과된 ‘인구통계학적 비용’이 매우 높을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