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 진료 체계 붕괴가 수도권에서도 현실이 됐다. 인천의 상급종합병원인 가천대 길병원이 의료진 부족으로 소아청소년과 입원 진료를 중단하면서 예견된 사태를 막지 못한 정부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정부는 '공공정책수가' 도입 등 대책을 내놓았지만 소아청소년과 기피로 수년간 누적된 의료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
13일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레지던트) 지원율은 코로나19 유행 이전인 2019년부터 정원을 못 채우고 80% 선으로 떨어졌다. 전 세계 초저출산 문제가 심화한 시기와 겹친다. 최근 마감된 내년도 전공의 지원율은 16.6%까지 추락했다. 추가 모집이 남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소아청소년과 환자가 급감했고 건강보험 수가도 낮아 정원 확보는 요원한 상태다.
소아청소년과학회가 지난 9월 전국 2, 3차 수련병원을 조사한 결과, 24시간 소아청소년 응급진료가 가능한 곳은 36% 감소했다. 내년에는 이들 병원의 65% 이상이 소아청소년의 응급진료, 병동진료, 중환자진료를 줄일 계획이다. 김윤경 고려대안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신생아나 어린이 환자들이 오면 밤을 꼬박 새야 하는 등 고생을 하는데 수가는 성인보다 낮아 젊은 의사들 입장에선 기피하게 된다"며 "필수의료인데도 전공의가 부족해 교수들이 번갈아 중환자실 당직을 서며 빈 자리를 메웠는데, 이런 상황이 2년 넘게 지속되니 교수들도 많이 지친 상태"라고 말했다.
전공의들이 소아청소년과를 기피하면서 전문의 평균 연령이 50세에 이른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실에 따르면 2021년 12월 말 기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40대(1,852명)가 가장 많고 이어 50대(1,635명), 60대 이상(1,295명), 30대 이하(1,218명) 순이다. 최근 수년간 전공의가 대폭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젊은 전문의는 앞으로 더 줄어들게 된다.
의료계에서는 젊은 의사들이 소아청소년과를 기피하는 이유로 저출산에 따른 불투명한 미래, 낮은 수가, 의사소통이 어려운 소아 환자 진료의 어려움 등을 꼽는다. 소아청소년과학회는 올해 초부터 △소아청소년 기본 입원 진료 수가 100% 인상 △흉부외과와 외과에서 시행하는 임금지원 등 수련지원 정책 △인력 부족 위기 극복을 위한 전문의 중심 진료 전환 등을 보건복지부에 건의했다.
지난 8일 열린 '필수의료 지원 대책안 공청회'에서 복지부도 소아청소년과 지원안을 일부 제시했다. △전국 20개 권역모자의료센터에서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 치료 △센터 미설치 권역에는 소아전문 응급의료센터 확충 △달빛어린이병원 등 지역사회 병‧의원급 야간‧휴일 소아 응급진료 지원 강화 등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개별 의료행위에 대한 가산이 아닌 일괄 사후 보상 방식의 공공정책수가도 내년에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은 가장 시급한 의료 인력 확충 방안이 빠졌다고 지적한다. 김지홍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이사장(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은 "복지부 대책은 시설 확보와 의료기관 운영 위주인데, 기피 현상으로 그런 곳에서 일할 젊은 의사들이 없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라며 "구체적 의료 인력 확보 대책이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