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퍼포먼스라는 점은 같았지만 아이돌 장규리와 배우 장규리의 춤은 어딘가 달랐다. 프로미스나인일 때 예쁜 댄스를 선보이고자 했다면 '치얼업' 응원단 춤에는 힘을 담았단다. 사소한 지점까지 신경 쓴 그의 연기 열정과 진심은 무대 위 모습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프로미스나인 탈퇴 후에도 든든히 곁을 지켜준 팬들이 있었기에 어느 것 하나 대충 할 수 없었다.
장규리는 최근 서울 마포구 상암동 K-ART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SBS 드라마 '치얼업'과 자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치얼업'은 찬란한 역사를 뒤로하고 망해가는 대학 응원단에 모인 청춘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장규리는 연희대 응원단 테이아의 부단장 태초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치얼업' 감독은 장규리의 말과 행동에서 태초희를 발견했다. 미팅 날 감독은 "어떤 사람인가요?" "뭘 좋아하나요?" "요즘 뭐하고 지내요?" 등 질문을 쏟아냈고 장규리는 자신의 진심을 전하려 노력했다. 미팅으로 연기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만큼 감독의 이러한 모습은 놀라움으로 다가갔다. "초희랑 비슷한 부분이 많은 사람을 찾고 있었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내가 대답도 시원시원하게 하고 털털하게 해서 감독님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는 게 장규리의 설명이다.
장규리가 바라본 태초희는 답답하지 않은 성격을 가진 '사이다' 같은 사람이다. 그는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한 게 자신과 태초희의 공통점이라고 설명했다. 학창 시절 혼자 밥을 먹던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단다. "내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살갑게 챙겨주는 스타일은 아니다. 초희처럼 은근히 챙겨주는 듯하다. 불의를 보면 잘 못 참는 성격이다"라고 말하는 장규리에게서는 태초희의 모습이 보였다.
장규리가 한때 프로미스나인으로 활동했기에 응원단으로 분한 그의 모습에 더욱 큰 기대가 모였다. 팀 탈퇴 후 더 이상 장규리의 춤과 노래를 볼 수 없을 거라고 예상했던 팬들에겐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다. 그는 "규리가 춤추고 노래하는 거 못 볼 줄 알았는데 봐서 좋다"는 팬들의 반응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장규리에게 태초희는 '비중이 어떻든 꼭 하고 싶은 역할'이었다. "팬분들이 좋아하는 걸 보면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는 그에게서는 자신을 사랑해 주는 이들을 향한 애정이 느껴졌다.
장규리는 팬들에 대해 얘기하는 내내 줄곧 미소 지었지만 과거 이들의 반응이 두려워 걱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프로미스나인 탈퇴를 알렸을 때의 이야기였다. 그는 "탈퇴한다고 했을 때 팬분들 반응이 걱정되긴 했다"고 털어놨다. "상처받고 제게 실망할까 봐 두려웠어요. 그런데 여전히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죠. 보답하기 위해 더 열심히 살 생각입니다."
프로미스나인은 장규리와 '치얼업'을 응원해 줬다. 장규리는 멤버들과 아직 같은 숍에 다니고 있다고 밝히면서 이들이 마주치거나 연락을 주고받을 때 '본방사수할게' '잘 보고 있어' 등의 이야기를 해줬다고 전했다. 많은 이들에게 응원을 받은 작품인 만큼 태초희 역할에도 정성을 다했다. 응원단 춤은 그가 어려움을 느낀 지점 중 하나였다. 퍼포먼스를 본 감독은 '걸그룹 같다'고 했는데 이는 장규리를 고민에 빠뜨렸다. '걸그룹 같은 게 뭐지'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며 아이돌과 응원단 무대의 차이점을 알아갔다. 장규리는 "춤의 목적도, 쓰는 에너지도 다르다. 걸그룹 춤은 내 몸이 예뻐 보이는 게 중요한 춤이다. 응원단 춤은 멀리서도 보여야 하니까 동작이 크고 엄청 많은 힘이 필요했다. 응원단 춤을 한 번 추면 걸그룹 춤 2, 3번을 연달아 추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출연진과의 호흡은 좋았다. 즐겁게 쫑파티를 즐기는 배우들을 보고 스태프들이 "MT 온 듯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장규리는 "학교 친구들처럼 엽기 사진을 찍어 단체 메신저방에 보내고 놀리고 했다. 작은 거 하나로도 깔깔거리며 얘기했다. 깻잎 논쟁에 꽂혔던 적도 있다"고 했다. 커피 내기 또한 자주 했다. 그는 "감독님도 커피 내기를 함께했다. 내기에 안 걸리고 커피를 얻어먹을 때 얄밉게 놀리고 가기까지 했다. 내가 걸리니 '초희야, 잘 먹을게' 했다"며 웃었다. 감독과 한지현은 촬영장의 분위기 메이커였고 배인혁은 장규리가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룹 프로미스나인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배우로서 '치얼업'의 주연으로 우뚝 서기까지 한 만큼 늘 성공만을 이뤄왔을 듯하지만 장규리 앞에도 난관은 있었다. 그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두 차례 출연했다. '아이돌학교'와 '프로듀시 48'이다. 서바이벌을 겪는 동안 그는 좌절을 맛보기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더욱 단단해졌다. 장규리는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따라주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모든 결과에 담담해질 수 있게 됐고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쪽으로 변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아예 바뀐 듯하다"고 말했다.
'치얼업'에서도 최선을 다했지만 아쉬움은 남는다고 했다. "앞으로도 연기에 만족하는 날은 없을 듯하다. 부족한 부분만 보이고 아쉬웠던 게 생각 난다"는 게 장규리의 설명이다. 전지현을 롤모델로 꼽으며 그처럼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연기를 사랑하는 장규리는 오래오래 팬들과, 그리고 시청자들과 함께하길 원한다. "롱런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죽을 때까지 연기하는 게 목표죠. 다양한 배역으로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아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