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일이 있으면 음식을 차려 놓고 사람들이 모여 즐긴다. 이런 일을 대부분 '파티'라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잔치'가 있다. 우리말 잔치는 500년 전 문헌에도 나오는 오래된 말이다. 19세기 말 명성황후의 의사였던 언더우드(Lillias Horton Underwood) 부인은 자신이 겪은 조선의 생활을 글로 남겼는데, 잔칫집에 오는 사람들을 보면 많이 먹으려고 일부러 며칠씩 굶고 오는 것 같다고 썼다. 배가 터질 때까지 먹고도 양손과 소매에 음식을 잔뜩 넣어서 돌아간다고 하는 묘사도 빠짐없이 적었다. 지금도 '잔칫집 문턱에서 쓰러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으니 가히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과 달리 외식문화가 없던 예전에 잔치는 집안에서 치를 큰일이었다. 손이 큰 안주인은 푸짐하게 차린 음식을 권할 뿐만 아니라, 집에서 기다릴 손님의 가족까지 챙기며 음식을 싸 준다. 할 일이 어디 음식 장만뿐이랴. 집에서 잔치를 하려면 이웃집에서 그릇부터 빌려야 했다. 앞집, 뒷집, 옆집에서 빌려온 여러 그릇들은 재질과 색깔이 다 달랐다. 돌려줄 때면 뉘 집 그릇인지 헷갈려 뒤바뀔 만도 한데, 안주인은 그릇 밑바닥까지 꼼꼼히 살피며 집집이 남긴 표식에 따라 돌려줄 곳을 찾아낸다.
잔치는 결혼식을 대신하는 말이다. 전통 사회에서 결혼식은 마당에서 거행된다. '마당을 빌리다'란 신랑이 신부의 집에 가서 초례식을 지내는 것이다. '잔치판'이 벌어지는 마당에는 '잔치 떡'과 '잔치국수'가 있다. 떡도 그렇지만, '진가루'라고 부르던 밀가루로 며칠씩 손이 가야 뽑아내는 국수도 귀했다. 맑은장국에 국수를 말고 갖은 고명을 얹은 잔치국수는 누군가의 결혼이나 회갑연 정도는 되어야 맛볼 수 있었던 음식이었고, '잔치국수'라는 말에는 지금도 그 잔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결혼한다는 말을 '마당 빌린다'거나 '국수 먹는 날'이라고 한다.
결혼을 전후하여, 신부 쪽에서는 예를 갖추어 신랑 쪽으로 음식을 보낸다. 딸과 함께 보내는 정성스러운 음식, 이것은 '이바지'이다. 지금도 이바지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 또는 물건을 갖추어 뒷바라지하는 것을 이른다. '잔칫날 다가오듯'이란 말 그대로, 잔칫날이 다가오면 주인은 마음만 급하다. 이에 비해 손님은 기대에 비해 정작 실속이 없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도 한다. 설령 그렇더라도 잔치를 하고 나면 따뜻한 마음을 나눈 사람이 남는다. 잔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