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이 아닌 작품을, 브랜드가 아닌 취향을 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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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9 09:55

쇼윈도엔 분명 레고 트리인데 자세히 보니 가방이 보인다. 겉모습은 화려한 플래그십 스토어인데 들어가보니 카페라고 한다. 패션 매장엔 미술 작품 전시가 한창이고 사야할 제품은 작품 옆에 자연스럽게 진열돼 있다. 잠시 앉아 담소를 나눈 이 의자가, 테이블이 어느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이 모든 정보는 SNS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된다. 사진으로 인증하기에 멋져 보이고, 자신에게 꼭 필요하며 가성비 뛰어난 제품이 요즘 시대 가치소비다.

한국인 아티스트 최초로 제품 협업을 함께한 루이비통의 박서보 화백의 아티카퓌신은 작가의 대표 연작 ‘묘법’ 중 2016년 작을 기반으로 디자인된 것으로 고도의 3D 고무 사출 작업을 정교하게 적용했다. 또한, 밝은 레드 및 버건디 색감의 가죽을 엄선한 뒤 수작업을 더해 고색미가 뛰어난 화백의 작품을 완벽하게 구현해내 호평을 받았다. 디젤은 앰버서더 박재범과 협업해 디자인을 내놓기도 했고 블랙핑크 제니는 자동차 내부를 디자인해 화제에 올랐다. 조셉앤스테이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손잡고 MI익스클루시브 제품시리즈를 선보였다.

캐릭터 덕후를 위한 이색 협업도 인기다. 벨먼은 ‘포켓몬’ 에디션 립밤과 핸드크림을 선보였고 나루토는 20주년을 기념해 몽블랑과 액세서리, 필기구, 스마트 워치 등 다양한 제품으로 팬심을 자극했다. 달려라 하니의 상징적인 하트 모티프와 한글 타이포그래피 캡슐 컬렉션은 JW앤더슨이 국내 단독으로 준비했다. 태그호이어는 마리오 카트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위트를 더하기도 했다.

카페나 건물이 주는 재미도 있다. MCM은 지난 9월 건물 외관의 디지털 미디어 아트 윈도우를 비롯해 설치 미술가 최정화의 작품과 요하네스 본자이퍼가 협업한 DJ 트렁크를 건물에 채웠다. 오는 31일까지 전개되는 지미추의 추 카페는 2022 신제품 ‘애비뉴’ 라인에서 영감을 받아 화려하고 마테라시적인 취향을 담은 조각적인 가구와 컬러감을 맞춘 카페트로 포토 스팟으로 떠올랐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였던 ‘메종 마르지엘라 카페’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담은 시각적인 커피와 디저트로 MZ세대의 큰 관심을 받았다. 요즘 소비 흐름은 똑같은 디자인, 유행 아이템을 선택하는 것보다 물건, 경험, 공간이 주는 의미에 금액을 지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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