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신의 성폭력을 고발했더니 돌아온 건 '천벌'이었다

입력
2022.12.10 04:30
12면
<97>신을 찬양하는 대신 성폭력을 고발한 아라크네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이한 작가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로서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남녀가 함께 고민해 볼 지점, 직장과 학교의 성평등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변신 이야기'는 오비디우스가 그리스·로마에 전해지는 신화와 전설 중 변신을 다룬 이야기를 추려 쓴 서사시 모음집이다. 이번에는 서사시 250편 중에서 '아라크네와 여신의 베짜기 경쟁'편을 소개한다. 로마의 시인이 기원후 8년에 썼기에 원작에서는 신들의 이름이 로마식으로 표기되었지만, 편의상 미네르바 대신 우리에게 익숙한 아테나로 부르겠다. 다른 신들의 이름도 마찬가지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름으로 쓰겠다.

리디아에 살던 염색공 이드몬의 딸 아라크네는 베 짜는 솜씨가 뛰어났다. 당시 사람들은 뛰어난 재능은 신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믿었기에, 지혜와 공예의 수호신인 아테나 여신에게 배워서 아라크네의 직조 기술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라크네는 이 재능은 자신의 것이며 아테나 여신과 아무 상관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이렇게 장담하기도 했다. 여신에게 와서 자신과 겨뤄 보자 하라고. 만약 자신이 진다면 어떤 벌이라도 받겠노라고.

소문을 듣고, 아테나는 백발 노파로 변신해 아라크네의 집에 찾아갔다. 노파의 모습을 한 아테나는 여신에게 용서를 빌라고 충고했다. 아라크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아라크네는 자신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아테나 여신더러 몸소 오시라고 하라고. 드디어 여신이 본모습을 드러냈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인간들은 두려워하며 여신 앞에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아라크네는 여전히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리하여 신과 인간의 베짜기 경연이 벌어진다. 보통 '베짜기'라고 번역하지만, 사실은 그냥 누런 삼베가 아니라 여러 색실로 무늬를 짜 넣은 직물인 태피스트리를 짜는 경쟁이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그림 후경에 보이는, 벽에 걸린 장식 직물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다. 자, 그럼 둘은 태피스트리에 각각 어떤 문양을 짜 넣었을까?

아테나는 직물 중앙에 포세이돈과 아테네 시를 놓고 경쟁하여 승리한 자신의 모습을 배치했다. 네 귀퉁이에는 네 개의 겨루기 장면을 더 짜 넣었다. 최고여신 헤라와 미모를 다투다 황새로 변한 안티고네 등 감히 신과 경쟁하다 벌 받은 인간들의 최후를 묘사한 것이다. 자신의 능력 과시는 기본, 거기에 신에게 도전한 인간이 어떤 벌을 받게 되는가를 더 보여주어서 아라크네에게 경고하는 것이 아테나가 짠 직물의 주제였다.

한편, 아라크네는 어떤 도안으로 직물을 짰을까. 백조가 된 제우스가 날개로 레다를 붙잡고 있는 모습, 제우스가 황금 소나기로 변해 다나에를 찾아가는 모습, 황소로 변신한 제우스가 에우로페를 속이는 모습 등, 최고신 제우스가 둔갑까지 하여 인간 여성들을 차지하기 위해 부도덕한 짓을 벌이는 모습을 담았다.

아라크네가 짠 직물은 아주 멋졌다. 아테나는 아라크네의 기술이 자신보다 뛰어난 것은 인정했다. 그러나 감히 최고신 제우스의 부정 행위를 만천하에 드러낸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아테나는 분노하여 아라크네의 작품을 찢어버린다. 회양목으로 만든 북으로 아라크네를 서너 번 몸소 때리기까지 한다. 이에 아라크네는 스스로 들보에 목을 매고 죽으려 했다. 그러자 아테나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 아라크네를 들어 올리며 말한다.

"목숨은 보존하되 늘 이렇게 매달려 있거라, 이 못된 것아! 네가 앞으로도 편안하지 못하도록, 이 벌이 법이 되어 네 씨족은 먼 후대에 이르기까지 두고두고 이런 벌을 받을지어다!"
천병희 번역, 오비디우스 지음 '변신 이야기'에서 인용

말을 마친 아테나는 헤카테 여신의 약초즙을 아라크네에게 뿌렸다. 그러자 아라크네의 머리카락이 빠지고 코와 귀가 없어졌다. 머리와 몸통 크기는 줄어들었다. 베를 짜던 손가락은 양옆으로 길어져 다리가 되어 버렸다. 아라크네는 꽁무니로 실을 내어놓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여신의 저주를 받은 인간 여성 아라크네는 오늘도 변함없이 베를 짜며 공중에 매달려 있다. 거미가 되어 실을 내어 거미줄을 짜고 있다는 말이다. 거미류 절지동물을 가리키는 영어가 '아라크네의 자식들'(arachnid)인 유래다.

이상 요약한 아라크네의 변신 이야기의 주제는 뭘까? 보통 신에게 대결하는 인간의 오만, 즉 '휘브리스(Hybris)'를 주제로 보는 경우가 많다. 오비디우스의 원작을 인용하여 자신의 의견을 더하는 저작물의 경우에도 그렇다. 단테가 '신곡'의 연옥편에 오만함 때문에 벌 받고 있는 것이라며 아라크네를 등장시키는 것이 대표적 예다. 아라크네를 검색해 보면 나오는 현대 저자들의 글도 대부분 그렇다. '예술가의 도전 정신과 패기, 자부심'을 부각시켜 서술하는 새로운 해석의 글이 최근 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아라크네를 부정적으로 보는 글이 훨씬 많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라크네가 벌 받게 된 이유가 과연 신에게 도전한 오만함 때문이었을까? 만약 오만이 주제라면, 여신보다 뛰어난 자신의 솜씨를 과시하기 위해 직물 문양에 아라크네 자신의 모습을 등장시켜야 했던 것 아닌가. 경쟁에서 포세이돈을 이긴 자신의 모습을 도안에 넣어 직물을 짠 아테나처럼. 또 재주를 과시한 오만이 문제라면, 아라크네를 벌 주기 위해서 다시는 그 재주를 발휘하지 못하도록, 즉 베를 짜지 못하게 했어야 할 것 아닌가?

참고 참으며 아라크네에게 여러 번 기회를 주던 아테나가 마침내 폭발한 결정적 계기를 다시 보자. 여신보다 자신의 직조 능력이 뛰어나다는 교만한 말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신에게 경쟁을 제안했기 때문도 아니다. 바로, 경쟁 중 아라크네가 짠 직물 속 문양 때문이었다. 그럼 아테나는 자신의 아버지인 제우스의 흉을 드러냈기에 분노한 것일까?

축약본이 아닌 '변신 이야기' 원전을 보자. 아라크네는 직물의 문양으로 제우스만 다룬 것이 아니다. 싫다 하는 인간 여성을 상대로 포세이돈, 크로노스, 아폴론 등 다른 남신들이 부도덕한 만행을 저지르는 장면도 짜 넣었다. 그렇다면 아라크네가 짠 태피스트리의 주제는 제우스 고발만이 아니다. '인간 여성에 대한 남신의 성폭력 전체 고발'이었다. 그래서 아테나가 분노하여 아라크네에게 벌을 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테나는 아버지의 총애받는 딸로서 가부장제를 수호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인의 조상은 원래 발칸반도 북쪽에 살다 기원전 2000~1200년경 현재의 그리스 지역으로 왔다. 이들은 이 지역을 정복하면서 원주민의 토착신도 받아들여 제우스를 최고신으로 삼아 신화를 재편성했다. 이때 복잡한 신들의 관계를 혼인이나 부모 자식 관계로 정리하는데, 방법은 당시 가족제도인 강력한 가부장제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후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이 유럽 문명의 기반이 되면서 그리스·로마 신화는 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더 이상 올림포스 12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없지만, 신화 속 고대 가부장제가 굳건히 살아남아 새로운 세대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남신의 성폭력을 고발한 인간 여성은 여전히 벌 받아 마땅한 오만한 인간으로 해석된다. 신이 아닌 인간 남성의 잘못이나 폭력을 고발하는 여성도 늘 아라크네처럼 도덕적 비난을 받게 된다. 미투 고발 뉴스를 보자. 가해자 남성보다 피해자 여성이 더 도덕성을 공격당하는 예가 많다. 고대 신화 시대의 아라크네 시절부터 변함없이 반복되는 패턴이다. 가부장제에서, 남성은 여성에게 신과 같이 존경하고 복종해야 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성은 아무리 남성 권력에 의해 피해를 당해도 그 사실을 드러내어 감히 고발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와 같은 허구 이야기든, 역사적 사실이든 기존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해석하는 주체는 대부분 남성이었다. 아니면 아테나 여신처럼 혜택 받은 일부 여성이었다. 그래서 이야기의 주제는 늘 남성 지배에 용이하게 여성을 단도리하는 쪽으로 굳어지곤 한다. 현실에 만연한 폭력인데도 고발하면 벌 받기에, 입은 막히고 베 짜기를 강요당했던 여성들은 모두 거미, 아라크네의 자식들(arachnid)인 셈이었다. 가부장제의 수호 여신이 저주한 "네 씨족은 먼 후대에 이르기까지 두고두고 이런 벌을 받을지어다!"에서 아라크네의 씨족은 오직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것이다.

오랜 세월을 두고 이미 주제가 정해진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기존의 권력과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되기에 중요하다. 익숙한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하는 능력을 가진 아라크네, 신을 찬양하는 흔한 문양 대신 성폭력을 고발한 문양을 짜 넣은 아라크네의 패기를 지금 재평가해야 할 이유다.

박신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