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님들의 '수상한 주식 투자' 반복되는 이유는

입력
2022.12.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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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의원 보유주식 전수조사
직무관련성 관련 의심 사례 다수 
불투명한 심사와 제도적 공백 원인



공직자가 공적 지위를 활용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막기 위한 이해충돌방지법이 올해 5월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국회의원의 주식 이해충돌 문제는 여전히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얼마 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방위산업주 보유와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의 지리정보업체 주식 보유 논란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한국일보가 올해 3월에 발표된 '2022년도 고위공직자 정기재산변동신고 공개자료'를 바탕으로 21대 국회의원의 보유 주식을 전수 분석한 결과, 의원 299명 가운데 보유 주식을 신고한 의원은 142명(47.4%)이었다. 이 중 4명은 소속 상임위와 이해충돌이 의심되는 주식을 보유한 상태였다.

이 외에도 보유 주식이 3,000만 원을 초과하고 직무관련성이 있을 경우 금융회사에 맡겨 60일 이내 처분하도록 한 주식백지신탁 제도의 허점으로 상당수는 주식을 처분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의원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 범위에 비해 소속 상임위원회에 한정된 직무관련성 인정 범위가 너무 좁고, 백지신탁만 하면 이후 재산공개를 건너뛸 수 있고, 백지신탁한 비상장주식 등은 매각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이에 국회의원들에게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안일한 인식이 팽배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무관련성 없다지만... 곳곳서 이해충돌 의심

국토교통위 소속 김희국 국민의힘 의원은 본인 명의로 맥쿼리인프라 상장 주식 3만5,887주(약 4억 원 상당)를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주식은 사회간접자본(SOC)에 투자해 수익을 얻는 상품이라 국토위 업무와 이해충돌이 우려되는 종목이다. 김 의원은 2년 전에도 배우자 명의로 맥쿼리인프라 주식 1만4,552주를 보유하고 있다가 이와 비슷한 지적을 받고 매각한 바 있다. 이번에도 똑같은 주식을 당시보다 2배 이상 사들인 셈이다. 현재 해당 주식은 김 의원이 배우자에게 전부 양도한 상태다.

김 의원은 "직무관련성 심사에서 보유해도 된다는 답변을 받고 다시 샀다"고 해명했다. 간접투자상품은 직무관련성 심사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이유에서다.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법적 책임은 없지만 도의적 책임까지 없다고 볼 수 없다"며 "제도적 미비로 인한 심사 대상에 해당하지 않은 것일 뿐 옳다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보건복지위 소속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배우자와 장녀가 3,000만 원 이상의 바이오주(에이비온 2,242주)를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재산신고 때는 등록되지 않았던 자산이다. 강 의원은 21대 국회 전·후반기 모두 복지위 소속이라 이해충돌이 의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해당 주식은 주식시장의 하락으로 주식 가치가 3,000만 원 이하로 떨어지면서 백지신탁 대상에서 제외됐다. 강 의원실 측은 "국회사무처에서 처분 대상이 아니라 보유해도 상관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면서 "그것과 무관하게 9월 초쯤 주식을 매각했다"고 해명했다.

국방위 소속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도 수개월 동안 직무관련성이 있는 주식을 보유했다. 한 의원은 2022년 재산신고에서 본인 명의로 2,000만 원 상당의 방산주(현대로템 644주)와 배우자 명의로 1,200만 원 상당의 남북 관련주(현대엘리베이터 397주)를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방산주만 올해 1월 매각했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직무관련성 심사를 받기 전 주식을 매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이 설립한 건설업체 서호도시개발 비상장 주식 4만8,800주를 본인과 배우자 명의로 약 40억 원어치 보유하고 있는데도 21대 후반기 국회에서 상임위를 환경노동위로 옮겼다. 환노위는 중대재해처벌법과 각종 건설 사업에서 규제로 작용하는 환경부 환경영향평가를 다루는 상임위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21대 후반기 상임위를 배정받을 때 인사혁신처에서 승인을 받았다"며 "(이해충돌) 문제는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임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건설현장과 직접 관련성이 높은 법안"이라며 "인사혁신처가 직무관련성 해석을 너무 좁게 했다"고 지적했다.



불투명한 제도 운영과 제도적 공백이 구조적 원인

국회의원 보유 주식에 대한 이해충돌 문제가 반복되는 데에는 불투명한 제도 운영과 제도적 공백이 원인으로 꼽힌다.

①보유 주식의 이해충돌 여부를 판단하는 직무관련성 심사가 밀실에서 이뤄지고 있다. 현재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의 직무관련성 심사는 인사혁신처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가 맡고 있는데, 심사위원 구성이나 심사 기준, 절차, 결과, 판단 근거 등은 일절 공개되지 않는다.

②국회의원이 미칠 수 있는 광범위한 영향력과 취득할 수 있는 정보의 범위를 고려할 때 직무관련성을 소속 상임위로 한정하는 것도 맹점이다. '논란이 불거지면 상임위를 사·보임하면 그만'이란 인식이 팽배해 있다. 이에 상임위 관련 주식 보유를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지금처럼 3,000만 원을 초과하고 직무관련성이 인정되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도록 하면 예외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진다는 지적이다.

③해외주식과 암호화폐, 간접투자상품 등은 대상에서 빠져 있다. 투자 양상은 빠르게 변화하는데, 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해 생긴 공백이다. 김희국 의원의 경우도 간접투자상품이라는 이유로 직무관련성 심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대 국회부터 심사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되고 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현재 해외주식까지 확대하자는 법안은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이, 암호화폐를 포함하자는 법안은 신영대·이용우 민주당 의원,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 등이 발의해 행정안전위에 계류 중이다.

④장외 거래되는 비상장주식의 경우 재산신고 대상에는 포함돼 있지만 백지신탁 심사와 처리에 공백이 크다. 매수자를 찾기 어렵다는 이유로 장기간 보유할 수 있는 데다, 비공개로 거래되는 경우도 많아 가격이 널뛰기로 신고돼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올해 재산신고에서도 민주당 송영길 전 의원과 정성호 의원이 현대아산 주식을 보유하면서도 1주당 가격을 각각 5,000원, 1만4,831원으로 신고했다.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과 윤창현 의원도 코리아로터리서비스 주식을 보유했지만, 1주당 가격이 각각 4,635원, 1,533원으로 신고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해당 종목들은 장외주식시장(K-OTC)에서 거래되고 있어 신고기준일의 거래량 가중평균가로 신고해야 한다. 따라서 세 배가량 가격 차이가 나는 것은 잘못된 신고일 가능성이 크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규정과 다르게 신고한 사실이 확인되면 처분 대상이 되고 심사위원회에서 시정 조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⑤국회의원의 이해충돌 방지를 담은 국회법 개정안이 시행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기준을 담은 하위법인 국회 규칙은 제정되지 않은 상태다. 국회 규칙에는 신고 의무가 부여되는 주식 가격기준선, 주식 신고 절차와 방법, 관리 등이 담겨 있다. 해당 규칙안은 지난해 4월 발의됐지만 아직도 국회 정치개혁특위에 머물러 있다. 늑장 입법을 보다 못한 참여연대가 지난 9월 "국회가 국회규칙을 제정하지 않아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며 입법부작위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처분하거나 사·보임하면 끝?…허울뿐인 징계 규정

이와 함께 석연치 않은 주식 매입 사례가 발견돼도 사후 징계나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징계를 결정하는 국회공직자윤리위원회가 여야 교섭단체 간 협의로 임명된 국회의원과 전문가로 구성되는 탓에 독립성을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해충돌 문제가 불거져도 징계보다 주식 매각 또는 백지신탁, 상임위 사·보임 방식으로 손쉽게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이재명 대표의 방산주 보유 논란도 직무관련성 심사 결과가 나오기 전 주식을 전량 매각해 사안이 종결됐다.

우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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