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누구나 인생이라는 미로에서 길을 잃고 방황할 때가 있다. 걸어도 걸어도 벽에 부딪히고, 도움을 청하고 싶어도 누구 한 명 보이지 않는다. ‘가만한 당신 세 번째’는 그렇게 지쳐 주저앉으려는 이들에 손을 내밀어 주는 책이다. 세상이 가둬놓으려 해도 끝끝내 뚫고 나가 존재를 증명한 이들의 인생 역정이 적잖은 용기를 선사한다.
현직 기자인 저자가 한국일보에 연재 중인 동명의 부고 칼럼 서른 개를 엄선해 엮었다. 2016년 출간된 전작으로부터 6년 만의 후속 도서. 유명인 이름은 없다. 책 표지에 적힌 부제처럼 ‘인간다움의 가능성을 넓힌 이들’을 조명했다. 체제는 순응을 선호하기에, ‘인간다움의 가능성’을 넓히기 위해서는 투쟁과 반항에 나서야 했다. 그래서 책에는 페미니스트, 장애인, 흑인, 내부고발자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이름이 빼곡하다.
캘리포니아 롱비치 토박이 도티 프레이저는 억센 젠더 차별의 장애물을 뚫고 여성 최초 다이버의 길을 열었다. 영국인 노동자 레이 힐은 극우 이념에 사로잡혀 영국 네오나치 활동가로 살았으나, 은밀히 조직 정보를 언론에 제공해 극우의 추악한 실상을 세상에 알렸다. 성차별에 맞선 트렌스젠더 과학자 벤 바레스, 게이들의 생각을 풀어낸 잡지 '뒤로'를 창간한 이도진 등의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일보는 지난 20일 올해 가장 좋은 책을 뽑는 한국출판문화상 예심을 진행했다. 한 심사위원은 “논픽션 기록물은 내 경험을 확장해 세계와 연결해 준다”고 했다. 타인의 삶에 접근해 이해하는 것은 나라는 자아를 넓히는 창조의 과정이라는 뜻이다. 나를 성장하게 하는 어른을 위한 위인전 같은 책. 때로 찬란했지만 이따금 고달팠던 사연에 코를 훌쩍일 수 있기에, 아이 앞에서는 읽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