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인사이드] 대항해 시대는 끝났지만, 호날두 시대는 여전하다

입력
2022.11.29 20:00
23면
축구 전문 웹진 '히든K' 류청 편집장

월드컵 취재에 나섰다. 행선지는 카타르 도하가 아닌, 포르투갈 리스본이었다. 비행시간만 16시간 반(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항로 변경)이나 걸리는 곳으로 떠난 이유는? 한국 경기를 상대국(포르투갈)에서 보고 싶었다.

포르투갈은 우리와 인연이 깊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16강 진출을 확정한 상대 국가이고, 파울루 벤투 한국 대표팀 감독의 조국이기도 하다. 리스본의 한 택시 기사는 “벤투는 우리 팀(스포르팅 리스본)에서 몇 년간 있었다. 매우 좋은 감독”이라고 엄지를 치켜올렸다. 한국 팬들에게 미운털이 제대로 박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포르투갈 출신이다.

포르투갈은 신ㆍ구 조화가 잘 어우러진 팀이다. 최연장자이자 팀의 중심인 호날두는 1985년생이고, 2019년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한국을 상대로 맹활약한 뒤 AC밀란에서 최고 공격수로 활약하는 하파엘 레앙(2022~23시즌 14경기 6골)은 1999년생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를 3연패한 맨체스터시티 소속 선수도 여럿이다. 베르나르두 실바(미드필더), 주앙 칸셀루(측면 수비수), 후벵 디아스(중앙 수비수)는 대표팀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호날두는 전 세계 축구 기록을 다시 쓰고 있다. 깨질 것 같지 않던 알리 다에이(이란·109골)의 A매치 최다골 기록을 경신했고, 이번 대회에서도 가나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페널티킥으로 득점하면서 사상 최초로 월드컵 다섯 대회에서 골을 기록했다.

이런 호날두도 이번 대표팀 선발을 앞두고 조국에서 설화가 없진 않았다. 사실 호날두는 최전방 공격수로만 뛸 수 있고 활동 반경도 예전보다 적다. 포르투갈은 호날두가 지닌 결정력과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팀을 꾸릴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호날두와 역할이 겹치는 선수는 자리를 얻기 쉽지 않았다. 포르투갈에서 활동하는 'Best11 sports' 정현정 대표는 “분명 아쉬운 부분이 있으나 대표팀에서 호날두가 가지는 엄청난 상징성을 무시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고 했다. 페르난두 산투스 포르투갈 감독도 이 말을 부정하긴 어려운 게 사실이다.

대회 도중에는 소속팀(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결별했다. 호날두는 월드컵 시작 전언론 인터뷰에서 에릭 텐하흐 감독과 맨유 구단에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했다. 이어 팀 동료이자 대표팀 동료인 브루노 페르난데스와 어색한 모습(이후 농담 상황이었다고 해명)을 연출하기도 했다. 리스본 현지에서 만난 호날두 팬도 “호날두의 행동은 잘못”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런 호날두는 지난 25일 가나전에서 모든 의심과 의혹의 눈초리에 골로 답했다. 직접 페널티킥을 얻어내 골로 연결했다. 호날두가 득점하자 리스본의 스포츠펍은 달아올랐다. 28일 우루과이전은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직접 관전했다. 골을 넣진 못했지만, 그가 그라운드에서 이끌어내는 반응과 분위기는 역시 달랐다. 골도 분명 머리에 맞았을 것이다!

리스본은 대항해 시대에 영화를 누렸다.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도로 이름(금길, 은길)에서 그 전성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물론 지금은 대항해 시대는 끝났지만, 그날만큼은 리스본이 빛났다. 호날두 시대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류청 '히든K'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