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선수들에게 "국가 안 부르면 가족들 고문·감금" 협박

입력
2022.11.2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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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전 국가 제창 거부 뒤
"반정부 시위 동조하면 가족 위험"

이란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이란 정부로부터 국가 제창을 거부하는 등 반정부 시위에 동조하는 행동을 할 경우 가족들의 안전을 위협하겠다는 협박을 받았다.

29일(한국시간) 미국 CNN에 따르면 이란 선수들이 지난 21일 잉글랜드와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B조 1차전에서 국가 부르는 것을 거부했다가 이란 혁명수비대(IRGC)와의 회의에 소집됐다고 보도했다. CNN은 소식통을 인용, 이 회의에서 이란 선수들은 앞으로 국가를 부르지 않거나 어떤 형태로든 반정부 시위에 동참할 경우 가족들이 고문을 받거나 감금될 것이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란 선수들은 25일 열린 웨일스와의 2차전에서는 국가를 불렀다.

이란에서는 지난 9월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22)가 히잡 사이로 머리카락이 보이는 등 복장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갔다가 갑자기 숨진 사실이 알려진 후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산하고 있다. 이란 인권운동가통신(HRANA)에 따르면 지난 25일 기준 미성년자 63명을 포함해 448명의 시위 참가자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집계됐다.

애초 이란 정부는 월드컵 개막 전 선수들에게 승용차 등 선물을 줄 것을 약속했지만, 잉글랜드전 이후 선수들을 협박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전해졌다. 사르다르 아즈문(27·레버쿠젠) 등 주요 선수들이 이란 정부의 강경 진압을 규탄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 데다, 잉글랜드전 국가 제창 거부 등으로 이란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이란은 이번 대회 기간 혁명수비대 요원 수십 명을 투입, 선수들이 외국인과의 만남 등 금지 사항을 어기는지 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축구는 이란의 최고 인기 스포츠인 데다, 월드컵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벤트다. 이란 정부가 선수들의 입을 막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이유다.

하지만 대회가 진행될수록 이란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더 높아지고 있다. 29일 포르투갈과 우루과이의 H조 조별리그 경기에는 후반 중반 "이란 여성을 존중하라"는 문구가 쓰인 옷을 입은 남성이 무지개 깃발을 들고 난입하기도 했다. 미국축구협회는 이란 여성들에 대한 지지의 의미로 이슬람 공화국 문양을 삭제한 이란 국기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했다가 이란 측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승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