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경기 수원시의 A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 1층 한쪽에 마련된 피트(PITㆍ건축 설비 등을 설치하거나 점검하기 위해 설치된 공간)에 들어서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타일과 단열재, 곰팡이 핀 시멘트 포대, 페인트통 등 각종 쓰레기가 뿜어대는 악취로 숨을 쉬기 힘들 정도였다. 지하 2층 다른 피트에는 버려진 사무용 기기와 쓰다 남은 일회용 컵, 담배꽁초도 보였다. 폐기물 중 상당수는 2012년 입주 때부터 지금까지 10년 넘게 방치된 것들이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은 “비가 오거나 습한 날에는 역한 냄새가 밖으로 새어 나와 입주민 민원이 빗발친다”고 혀를 찼다.
이 아파트만 그럴까. 지난해에는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에 건축폐기물이 6년째 버려져 논란이 됐다. 최근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역시 지하 5층 공용공간에 버려진 폐기물에서 올라온 악취로 입주민들이 건설사에 항의하는 일이 있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환경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건설폐기물법’ 위반 건수는 공공기관(한국토지주택공사 등) 273건, 민간건설사 1,138건 등 1,411건에 달했다. 특히 민간건설사의 위반 건수가 2017년 63건에서 지난해 341건으로 5배 넘게 폭증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형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에서 건축폐기물 관련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건설폐기물 처리 규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환경부의 ‘건설폐기물의 처리 등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에는 폐기물 처리는 최초 발주자 혹은 건설공사 전부를 도급받은 업체가 책임지도록 명시돼 있다.
그러나 규정을 준수하는 건설사는 드물다. 발주자나 시공사는 하자보수를 하려면 건축 자재를 비축해 둬야 한다는 이유를 든다. 수원 A아파트 시공사도 같은 해명을 내놨다. 문제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발생한다. 몇 년이 흘러 쓸모없게 된 자재들이 그대로 쓰레기로 변하는 데도, 시공사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책임을 회피하거나 하청업체에 떠넘기기 일쑤다. A아파트도 항의가 계속되자 그제야 시공사 측이 최근 태도를 바꿔 폐기물을 처리하겠다고 입주민들과 약속했다. 10년을 악취로 고통받은 입주민들은 시공사의 마지 못한 조치에 분통을 터뜨린다. 한 입주민은 28일 “입주 전 당연히 치웠어야 할 쓰레기를 이렇게 오랜 시간 나 몰라라 한 건 대기업의 횡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하자보수는 변명에 가깝다. 아무리 불법행위를 해도 약간의 과태료만 물면 되는 ‘솜방망이 처벌’ 탓에 버젓이 건축쓰레기를 쌓아두고 있는 것이다. 건설폐기물법상 폐기물을 처리하지 않은 주체가 내야 하는 과태료는 최대 1,000만 원이 고작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지방자치단체가 조치 명령을 내릴 수 있지만 역시 단순 과태료 수준에 그친다”면서 “위반사항이 반복ㆍ누적되면 영업정지나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등의 실효성 있는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애초 지자체가 준공 승인을 할 때 꼼꼼하게 현장을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준태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 교선국장은 “준공 승인 단계에서부터 건설폐기물 처리 여부를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