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폭력 방지 조례' 하나도 없는 전국 6곳은 어디일까 [여성폭력 추방의 날]

입력
2022.11.25 13:00
[11·25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
광역·기초 지자체 조례 조사해봤더니
스토킹 등 예방 조례 없는 곳들 많아
조례 있어야 지자체 예산 투입 가능

매년 11월 25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이다. 여성폭력은 피해자 대부분이 여성인 '젠더 기반 폭력'을 지칭하는데, 성폭력·가정폭력·스토킹·디지털 성범죄 등이다.

정치인들은 '여성이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앞다퉈 공언하고 2018년 여성폭력 방지기본법이 만들어졌지만, 한국의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스토킹 관련 112 신고 건수는 올해 7월 기준으로 1만6,571건으로 이미 지난해 전체 신고 건수(1만4,509건)를 넘어섰고, 지난해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자는 2020년보다 39.4% 늘어난 6,952명에 달했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이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여성폭력 방지 조례(올해 11월 기준)가 제정되어 있는지를 살폈다. 5개 키워드(여성폭력, 성폭력, 가정폭력, 스토킹, 디지털 성범죄)로 조례를 검색·분류했다.

지자체 차원에서 만드는 조례는 법보다 낯선 개념이지만 일상과는 오히려 더 가깝다. 학생 무상급식과 두발 자율화 등 시민의 삶을 직접적으로 바꾼 일들은 모두 법이 아닌 조례에서 시작됐다. 또한 조례가 있어야 지자체가 관련 분야에 예산을 투입할 근거가 된다.

이곳엔 여성폭력 관련 조례가 하나도 없다

'경북 경주·영주·상주·군위·성주, 전남 해남.'

전국 17개 광역 자치단체와 226개 기초 자치단체 중 여성폭력 방지 조례를 비롯해 성폭력과 가정폭력, 디지털 성범죄, 스토킹 관련 조례가 단 하나도 없는 6곳이었다.

전국 243개 지자체 중 무려 97%(237곳)가 '여성폭력 방지 조례'를 제정했는데, 이 6곳은 그조차 없었다. 보통 법이 생기면 이를 준용한 조례도 만들어지는 만큼 2018년 여성폭력 방지법이 제정됐는데도 여성폭력 방지 조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이례적이다.


여성폭력 방지 조례는 지자체마다 일부 내용의 차이는 있지만, 여성폭력 방지법에 따른 여성폭력 피해자 보호·지원에 관한 기본 사항을 규정한다. 지자체장이 범죄 예방 및 피해자 지원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무엇보다 이를 위해 필요한 사업비를 지원할 수 있다고 명시해둠으로써 실질적인 의미가 있다.

실제로 경기도의 2023년 예산안을 보면 '경기도 디지털성범죄 방지 및 피해지원에 관한 조례'를 근거로 피해자 원스톱 지원센터 예산을 책정하기도 했다.


경북 경주를 비롯한 6개 지역들은 양성평등 기본 조례 정도가 존재할 뿐이었다. 해당 지역 의회에서는 대부분 관련 조례가 없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해남군의회 관계자는 "성폭력·성희롱 및 2차 피해 방지 지침 등은 있지만 조례는 없는 상황"이라며 "다른 이유가 있어 제정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 지역에도 만들 예정"이라고 전했다. 경주시의회 관계자도 "현재는 조례가 없지만 검토해보고 필요하다면 제정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5개 분야의 관련 조례를 모두 제정한 지자체는 없었다. 다만 광역 지자체 중에서는 경기도와 전라남도가 4개 분야(여성폭력·가정폭력·디지털 성범죄·스토킹)로 가장 많은 관련 조례를 가지고 있었다. 울산과 전라북도는 여성폭력 방지 조례만을 가지고 있어 광역 지자체 중 가장 적었다. 기초 지자체 중에서는 인천 남동구가 가정폭력을 제외한 모든 분야의 조례를 제정, 여성폭력 방지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신당역 스토킹'에도…예방 조례 11%뿐

지난해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9월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 일어나면서 피해자 보호의 사각지대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런 소요가 있었는데도 스토킹범죄 예방 조례는 서울과 경기도를 비롯해 28개 지자체, 단 11%의 지역에만 존재한다. 지난해 전국 최초로 스토킹 예방 조례를 통과시킨 경기도의회에서는 "스토킹 처벌법에서는 가해자 처벌에 대한 사항만 규정되어 있어 자치단체 차원에서 별도의 피해자 지원 조례가 필요하다고 봤다"라고 제정 이유를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조례가 제정되면서 내년도 예산안에 스토킹 피해자 보호시설 운영을 위한 예산 35억 원이 반영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디지털 성범죄는 74개 지역(전체의 30%)에서 예방·방지 조례를 제정해두고 있었다. 17개 광역 지자체 중에서는 울산과 전북만 관련 조례가 없었다. 다만 전북도의회는 디지털 성범죄 예방 및 피해자 보호·지원 조례와 스토킹 범죄 예방 조례 제정안을 발의해 둔 상태다.

성폭력과 가정폭력은 별도의 조례보다는 여성폭력 방지조례 안에 명시해둔 경우가 많았다. 가정폭력과 성폭력 조례를 별도 제정해 둔 지역은 각각 12곳(경기·경기 고양, 광명, 광주, 부천, 시흥, 오산, 용인, 파주, 평택, 화성·전남)과 6곳(부산·인천 강화, 남동·경기 고양, 광명, 평택)에 그쳤다.

광역 지자체 중 유일하게 성희롱·성폭력 예방 조례를 마련한 부산은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계기가 됐다. 조례의 적용 범위도 부산시장과 시 소속 직원으로 하고 있다.

"조례는 법률 공백 메우는 실질적 역할"

한국여성의전화를 비롯한 여성·인권단체에서는 여성폭력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고 여성폭력방지 조례 제정 운동을 하기도 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법률이 있더라도 생길 수밖에 없는 제도적 공백을 지방정부에서 조례를 통해 메우면서 보다 실질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면서 "또 법 제정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조례는 상대적으로 유연할 수 있어 선제적인 대응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조례가 생겼다고 해서 지자체의 역할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정아 경기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여성폭력 방지를 실행해 나가는 기반이 되는 사업 편제, 예산집행 등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기반으로 삼고자 마련한 조례들은 문항으로 남아있게 될 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전혼잎 기자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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