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임금보다 높게 오르면서 3분기 기준 실질소득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최대로 줄었다. 또 통장에 찍히는 명목소득이 유일하게 소득 하위 20%만 줄면서 빈부 격차는 심해졌다. 경기 하강기에 가계 살림살이가 팍팍해지고 있는 동시에 양극화도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이 17일 발표한 '2022년 3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가구당 월평균 명목소득은 486만9,000원으로 1년 전 대비 3.0% 증가했다. 3분기 명목소득 증가폭이 전년(8.0%)보다 크게 떨어진 데다 물가 상승률 역시 6%대를 넘나들면서 실질소득은 2.8% 감소했다. 숫자상 소득은 전년보다 14만 원 늘었지만 이 돈으로 살 수 있는 물품은 오히려 줄었다는 뜻이다.
3분기 기준 실질소득 감소폭은 금융위기가 한국 경제를 위축시켰던 2009년(-3.2%) 이후 가장 컸다. 또 실질소득이 뒷걸음질친 건 5년 만이다.
명목소득 중에선 근로소득, 사업소득이 각각 5.4%, 12.0% 증가했다.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일하는 사람과 자영업자 매출이 늘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전소득은 18.8% 감소했다. 지난해 3분기 하위 88%에 준 1인당 25만 원의 '코로나19 상생국민지원금' 지급 효과가 사라지면서 반짝 늘었던 이전소득이 급감했다.
다른 지표를 봐도 살림살이 사정은 후퇴하고 있다. 우선 가구당 실질소비가 0.3% 증가에 그치면서 바짝 움츠러들었다. 특히 식료품, 가정용품·가사서비스의 실질 소비는 각각 12.4%, 13.5% 감소했다. 고물가로 치솟은 먹거리 지출을 아낀 것이다. 국민연금 보험료 등 비소비지출 중에선 고금리 후폭풍으로 이자비용이 19.9% 뛰었다.
한계에 내몰린 적자가구 비율 역시 25.3%로 전년보다 3.7%포인트 증가했다. 적자가구는 총소득에서 비소비지출을 빼 실제 소비에 쓸 수 있는 돈인 처분가능소득과 비교해 소비지출이 큰 가구다. 한 달 소득만으로 저축과 투자는 고사하고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든 가구가 그만큼 많아졌다는 의미다.
적자가구는 저소득층에 몰려 있었다. 소득 구간을 5개로 쪼갰을 때 하위 20%인 1분위 가구 중 적자가구 비율은 57.7%에 달했다. 반면 상위 20%인 5분위 중에선 10가구 중 1가구만 적자가구였다.
빈부 격차도 커졌다. 소득 상위 4개 구간인 2~5분위는 명목소득이 늘었지만 1분위는 1.0% 감소했다. 1분위는 지난해 소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코로나19 상생국민지원금 효과가 없어지자 명목소득마저 감소로 주저앉았다. 그 결과 소득 5분위배율이 전년 대비 0.41배포인트 상승한 5.75배로 나타나는 등 양극화가 심화했다.
갈수록 가라앉는 경기는 앞으로 소득과 분배 지표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소득·분배를 비롯한 우리 경제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복합 경제위기가 취약계층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고용·사회안전망 강화 등을 통해 저소득층 삶의 질을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