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히 얼어붙었던 미중관계가 지난 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간신히 회복 수순에 들어섰다. 중단됐던 미중 간 대화 채널도 복구되는 등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미중 관계가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전 수준으로 회귀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중 간에 가장 민감한 사안인 '대만 문제'에 대해선 어떤 합의도 이뤄지지 않아, 이번 회담이 미봉에 그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양측의 이해가 언제든 충돌할 수 있어, 어렵게 조성된 대화 무드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16일 "(정상회담의 후속 조치로) 수개월간 중단됐던 중미 군사 당국 간 대화가 곧 재개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중국이 폐쇄했던 군사·기후변화·사법 등 미국과의 소통 채널이 다시 복원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미국도 중국과의 소통 재개를 공식화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과 정상회담 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중국 측 카운터파트와 접촉할 것"이라고 밝힌 데 이어, 미 국무부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내년 초 중국 방문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블링컨 장관의 방중이 성사될 경우 2018년 6월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 이후 4년여 만의 미국 최고위급 인사의 중국 방문이 된다.
미중 간 또 다른 쟁점이었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반목도 상당 부분 누그러졌다. 백악관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번 회담에서 "승자가 없는 핵전쟁은 있어선 안 되며 우크라이나에서의 핵 사용에 반대한다는 (미국의) 입장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시 주석 나름의 비판적 시각이 우회적으로나마 드러난 셈이다.
이 밖에 기후 변화·보건·식량 안보 등 비전통적 안보 분야에서의 미중 간 협력 의지를 재확인한 점도 성과로 꼽힌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중 패권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최악의 충돌을 막자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양측이 가장 민감해하는 대만 이슈에 관해서는 어떤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시 주석이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 이익 중에서도 핵심"이라며 "중미 관계에서 넘으면 안 되는 첫 번째 레드라인"이라고 강조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한 당사자에 의한 어떠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도 반대한다"는 기존 입장만을 전달했다.
민주당과 공화당 간 세력 균형을 이룬 미국 중간선거 결과가 미중 간 긴장을 부추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주쑹링 베이징연합대학 대만연구원 소장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대만을 지원해야 한다는 뜻을 공유하고 있다"며 "대만 문제를 둔 양측 간 경쟁이 심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중(反中) 표심을 얻기 위한 미 정치인들의 대만행이 이어지고, 군사적 긴장감은 다시 높아질 것이란 뜻이다.
국제 외교무대에 복귀한 시 주석의 다자외교 추진도 미중 관계 개선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 주석은 이번 주요 20개국(G20) 참석 기간 미국뿐 아니라 한국·프랑스·네덜란드·남아프리카공화국·호주·스페인 등 최소 9개국 정상과 양자 회담을 했다. 시 주석은 대부분의 회담에서 "진정한 다자주의"를 강조하며 중국을 배제하기 위한 미국 주도의 다자 체제를 비판했다. 글로벌타임스는 "G20 정상회의 기간 이뤄진 시 주석과 외국 정상과의 많은 양자 회담은 중국의 대국 외교가 국제무대에서 환영받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자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