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310원대까지 내리면서 미국 주식에 투자한 이른바 '서학개미'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달러당 원홧값이 가파른 속도로 올라 환차손(환율 변동에 따른 손해) 우려가 부쩍 커져서다. 특히 주가 하락에 베팅해 온 투자자도 적지 않은데, 이들은 최근 반짝 증시 상승세에 환차손까지 겹쳐 이중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달러 초강세가 누그러지면서 원·달러 환율은 최근 1,310원대까지 내렸다. 1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8.3원 내린 1,317.6원에 마감했다. 지난달 21일 연고점(1,439.8원)과 비교하면 약 한 달 사이 8.5%가량 하락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꺾였다는 소식에 11일 원·달러 환율은 하루 새 59.1원이나 급락하기도 했다.
사실 올해 들어 심화된 원화 약세는 서학개미 입장에선 무시 못 할 위안거리였다. 글로벌 증시 약세로 주가는 내렸어도 달러가 강세를 띠며 손실을 일부 만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달러 가치가 가파르게 약세를 띄면서 서학개미는 재차 환손실을 우려하고 있다.
원화를 달러로 바꿔 투자한 서학개미로선 달러 가치가 내리면 가만히 앉아서 손해를 보는 구조다. 가령 달러당 1,400원 환율로 A사 주식 100달러어치를 샀다고 가정해보자. 주가는 그대로이더라도 환율이 1,200원으로 내리면 원화 14만 원을 주고 샀던 주식이 12만 원이 돼 2만 원의 환산 손실이 발생한다.
여기에 최근 서학개미가 주로 많이 사들인 종목의 주가마저 하락폭이 큰 탓에 이들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지난 한 달간 서학개미가 가장 많이 순매수한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주가는 이 기간 7%가량 빠졌다. 같은 기간 환율 하락률을 합하면 환산 손실은 약 14%에 달한다.
서학개미가 세 번째로 많이 순매수한 미국 반도체지수를 역으로 3배 추종하는 인버스 상품인 '디렉시언 데일리 세미컨덕터 베어 3X(SOXS)'의 경우엔 최근 반도체 기업 주가가 상승한 영향에 한 달 새 주가가 56%나 빠졌다. 만약 1,430원에 이 종목을 사들인 서학개미라면 손실률은 60%대로 치솟는다.
한편 주식 정보가 오가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상투론'이 새삼 화재다. 이 총재는 지난달 12일 역대 두 번째 빅스텝(0.5%포인트 인상) 단행 뒤 해외 투자 관련 질문에 "환율이 1~2년 내 돌아올 것으로 생각지 않고 해외 위험자산 등에 투자하는 것은 상투를 잡을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당시 원·달러 환율은 올해 고점인 1,420~1,430원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