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자동심장충격기(AED) 관리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환자의 골든타임을 잡을 생명줄이지만, 정작 필요할 때 쓸 수 없는 현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에 편의점, 대중목욕탕 등에도 AED를 비치하는 일본과 대만 사례를 참고해 AED 접근성을 높이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정부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이태원 참사 이후 AED 설치 범위 및 위치, 구비 의무 시설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장소에도 AED 설치를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도 전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
이는 이태원처럼 많은 사람이 모이는 개방된 장소에 AED가 없어 초기 응급의료 대응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당시 사고 현장 반경 500m 내 AED는 3대뿐이었다. 이마저도 1대는 불이 꺼진 주민센터 안에 있었다. AED가 있어도 긴급 상황에선 쓸 수 없는 현실이 이번 참사로 드러난 것이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47조 및 시행령 26조에 따르면 사람이 많이 몰리는 일부 다중이용시설은 응급 장비를 의무적으로 구비해야 한다. 그러나 의무 구비 장소는 △일정 크기 이상의 철도 역사·터미널 대합실 △카지노 영업장 △경마장 △교도소 △전문체육시설 △중앙행정기관 및 시도 청사 등이다. 대규모 모임 장소가 포함되지 않아 접근성이 떨어진다.
일각에선 해외 사례를 참고해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실이 공개한 '자동심장충격기 적정 배치 및 효과적 관리방안 연구' 보고서(2020년 3월 복지부·한림대 산학협력단)에 따르면 일본은 편의점과 휴게소, 유치원, 소규모 스포츠 시설을 AED 설치 권고 시설로 명시했다. 일본은 설치 법령은 없지만, 지방자치단체가 정부의 적정 배치 가이드라인을 따르도록 권고한다.
AED 설치 의무를 가장 상세하게 정한 건 대만이다. 대만은 대규모 모임 장소도 설치 의무 장소로 규정했다. 관광지와 학교, 대규모 레저 시설·쇼핑몰은 물론, 목욕탕과 온천도 설치 권고 시설로 정했다.
싱가포르는 개인 소유 병원까지 설치하도록 했다. 이외 장소는 법률로 명시하지 않은 대신 싱가포르 심장협회가 대중이 많이 모이는 곳, 사무실 단지, 심장마비 고위험 인원이 사는 곳을 AED 설치 권고 장소로 정했다. 덴마크는 각종 협회와 종교사회시설, 단체 회의장에 AED를 갖추도록 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AED 설치 범위와 대수를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어떤 상황에서 써야 하는지 정확한 사용법을 익히도록 철저한 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수현 대한의사협회 이사는 "의료진도 2년에 한 번씩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을 정도로, 숙지시키는 게 중요하다"며 "사용을 활성화할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