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 A씨는 1일 학교로부터 ‘다중밀집사고 및 압사에 대한 안전 교육을 철저히 하라’는 내용의 공지 메일을 받았다. 알고 보니 학생들이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본떠 사람을 밑에 놓고 그 위에 엎어지며 장난을 치는 놀이가 유행이었다. 민원인은 아이들이 이를 ‘이태원 놀이’ ‘압사 놀이’로 부르며 논다고 학교 측에 항의했다. A씨는 7일 “일부 학생은 156명이 숨진 참사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교육 내용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일보가 취재해 보니 청소년들 사이에 온라인에서 떠도는 이태원 참사 장면을 놀이처럼 ‘재소비’하는 현상이 나타나 우려를 낳고 있다. 김모(44)씨가 근무하는 세종시 한 중학교에서도 체구가 작은 학생을 벽에 밀쳐 놓고 남학생 7, 8명이 압박하며 노는 걸 본 교사들이 기겁해 안전교육 필요성을 공론화했다.
아이들의 그릇된 행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참사 영상이 무분별하게 퍼진 탓이 크다. 김씨는 “청소년기에는 사고 의미나 충격을 되짚어보기보다 일단 화제가 되면 흉내부터 내 영상이 더욱 위험한 것”이라며 “자칫 압사 놀이가 학교사회 전반에 번질까 두렵다”고 걱정했다.
이미 유튜브, 트위터에서는 일명 ‘압사 놀이’ ‘햄버거 놀이’ 등의 제목이 붙은 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평소 SNS를 즐겨하는 대학원생 정모(29)씨는 “참사 당시를 연상케 하는 영상이 많은데, 이런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포하는 저의를 정말 모르겠다”고 분개했다.
유튜브 등은 시청자에게 혐오감을 주는 폭력적이고 불쾌한 내용의 콘텐츠를 상대로 삭제 및 연령제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요즘 참사 당일 영상을 거의 시청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간접 재생산된 영상까지 막는 방안은 현재로선 없어 참사 유족 등 피해자들에게 끔찍한 고통을 다시 떠올리게 할 수 있다.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아직은 사고에 직ㆍ간접적으로 노출된 많은 이들이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라며 “참사의 충격과 상처가 아물 때까지 자극이 될 만한 콘텐츠를 적극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도 이날 ‘재난상황에서 디지털 시민을 위한 미디어 이용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협회 측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사고를 흉내내 놀이를 할 경우 위험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큰 안전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