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게이머들 사이엔 운을 좇는 일종의 미신 같은 게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2년 넘는 시간 동안 한국은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 오징어 게임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운수대통한 한국에 가서 게임을 하면 대박이 날 것이라 기대하는 이유다."
지난달 27일 제주시 제주드림타워 카지노에서 만난 관계자는 코로나19 기간 중 한국 카지노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팬데믹으로 해외를 가는 사람이 줄고, 외국인 고객 확보도 어려워지며 찬바람이 불었던 한국 카지노 업계에는 최근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늘고 있다.
국내 카지노 업계가 되살아나고 있다. 7일 카지노 업계에 따르면, 3분기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의 매출은 390억 원, GKL은 240억 원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30~40% 수준이지만, 하늘길이 열리고 외국과 한국 도시를 잇는 직항 노선이 하나둘씩 재개되고 있어 매출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카지노 업계가 특히 주목하는 고객은 이른바 '큰손'으로 통하는 '카지노 VIP'다. 이들은 주로 '정킷(Junket)'이라 불리는 에이전시를 통해 카지노를 방문한다. 게임을 위한 환전이나 숙식 경비 등 필요한 금액을 정킷에 보관해두고 시설을 이용한다.
정킷들이 카지노 '큰손'들을 제주로 안내하는 가장 큰 이유는 편리한 시설이다. 넓은 객실과 수영장, 한 컬렉션 등을 갖춘 덕에 호텔에 오래 머물며 게임을 즐기기에 제격이라는 것이다. 최근 이곳을 방문한 일본인 관광객은 "한번 카지노관광을 오면 2박 이상 묵는데, 다른 카지노 호텔과 비교해 객실이 넓고 조식 메뉴가 다양해 음식이 물리지 않아서 오래 머물기 좋다"고 소감을 전했다고 한다. 실제 드림타워 카지노를 보유한 제주 드림타워 복합리조트 내 그랜드 하얏트 제주 호텔은 여섯 가지 조식 선택지를 제공해 여러 날 머무는 고객이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공항 접근성이 뛰어나 낮엔 골프나 시내 관광을 즐기고 밤엔 카지노를 이용하는 외국인도 많다.
제주드림타워 카지노는 면적 5,367㎡(연면적 15,510㎡)의 별천지였다. 내부에 들어서자 중앙부 천장에 길이 18m에 달하는 대형 샹들리에가 카지노 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세계적인 샹들리에 회사 라스빗이 제작한 이 샹들리에는 무게가 13톤(t)에 달한다.
안으로 걸음을 옮기자 세계에서 가장 큰 전자테이블 스크린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맨 앞줄에 앉은 딜러가 라이브로 게임을 진행하면 전면에 설치된 화면 위로 빠르게 움직이는 딜러의 손과 카드가 나타났다. 게이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화면을 보며 순식간에 펼쳐지는 카드를 눈으로 따라가고 있었다.
'카지노의 왕'으로 불리는 바카라(어느 한쪽을 택해 9 이하의 높은 점수로 승부하는 카드 게임) 테이블이 150대가 모여 있는 공간은 큰 운동장 같았다. 또 슬롯머신 189대와 전자테이블게임(ETG) 70대, ETG 마스터테이블 8대 등 414대의 최신 게임시설도 다채로운 색을 뽐내고 있었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고객이 많을 땐 시설의 20~30%를 채운다고 한다.
특히 9월 오사카에 전세기를 띄워 일본 카지노 VIP 39명을 초청했을 땐 '고액베팅존(하이리밋존)'이 꽉 찰 정도였다고 한다. 그동안 제주 카지노 손님의 대다수를 이루던 '단골' 중국인 관광객이 코로나19 봉쇄로 한국에 오지 못하고 대신 일본에서 '큰손'들이 많이 찾아오면서 카지노도 이들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늘리고 있다. 카지노 관계자는 "일본 고객이 많이 찾는 날에는 화면에 표기되는 플레이어-뱅커 표기를 일본식으로 바꾼다"고 설명했다. 중국식은 플레이어가 파랑, 뱅커가 빨강인데 일본식은 플레이어를 빨강, 뱅커를 파랑으로 표시한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 수가 지난해보다 30%가량 늘며 관광업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제주관광협회에 따르면, 8월에는 128만 명, 9월에는 106만 명이 제주를 찾았다. 이 중 외국인 관광객은 8월 7,456명, 9월 7,658명으로 지난해(4,376명) 대비 70.4% 늘었다. 제주 카지노 업계는 11일 일본~제주 직항 노선 여객기 운항이 다시 시작되면 더 많은 카지노 고객이 방문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장의 전망도 긍정적이다. 이남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최근 리포트에서 "여행사업을 운영 중인 롯데관광개발이 전세기를 띄워 카지노 VIP를 초대한 시도는 카지노 고객은 물론 여행 고객도 늘리는 전략"이라며 "제주를 잇는 항공 노선이 재개되면서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카지노 관광객이 증가하고 실적도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내년 하반기에는 외국 자본을 등에 업은 새로운 카지노 '인스파이어'가 영종도에 상륙할 예정이다. 미국 코네티컷주(州)의 원주민인 모히건 부족이 인스파이어의 사업자이자 운영사이다. 인스파이어 관계자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인천국제공항이 동북아 허브이고, K콘텐츠의 우수성이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좋은 유인책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영종도를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스파이어에 따르면, 이곳에는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국내 최초 '아레나 공연장(대규모 공연장 및 스포츠 경기장)'도 들어설 예정이다.
언뜻 다른 카지노가 문을 열면 경쟁사에 고객을 뺏길까 경쟁이 치열해질 것 같지만, 카지노 업계는 제주도 카지노의 활성화와 영종도 인스파이어의 진입을 되레 환영하는 분위기다. 카지노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우리만 잘된다고 좋은 게 아니라, 국내 플레이어(카지노 사업장)들이 많아지는 게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