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워싱턴과 서울 외교가를 술렁이게 했던 미국 고위 당국자의 북핵 관련 발언은 두 가지다.
먼저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 그는 지난달 18일 관훈클럽 토론에서 미군 전술핵무기 한국 재배치 관련 질문에 “무책임하고 위험하다. 긴장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제기됐던 전술핵 재배치나 한국식 핵무장 주장을 일축한 것이었다.
또 다른 문제 발언은 같은 달 27일 보니 젠킨스 미국 국무부 군축ㆍ국제안보 담당 차관에게서 나왔다. 그는 워싱턴 싱크탱크 행사에서 “김정은(북한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전화기를 들고 ‘군축에 관해 얘기하고 싶다’고 한다면 ‘안 돼’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미국이 북핵 군축협상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논란을 야기했다.
두 발언의 파장이 커지자 조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의 정책에는 어떤 변화도 없다”는 추가 설명까지 내놓으며 진화했다.
그런데 이 같은 소동이 반복될 때마다 자괴감이 든다. 북핵ㆍ북한 문제에 있어 미국의 ‘입’만 쳐다보면서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와 처지 때문이다.
북한은 사실상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불법 핵개발’이니 인정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 7차 핵실험 준비 등 도발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의 핵, 재래식 무기, 미사일 방어 등 ‘확장억제’ 공약을 강화해야 한다는 기조도 틀리지 않았다.
문제는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외교안보 구도의 위험성이다. 인도ㆍ태평양 전략의 한 요소로 북한 문제를 다루는 미국과 핵을 머리에 이고 있는 남북 대치 구조를 평화의 한반도로 바꿔야 하는 한국은 궁극적 외교 목표에서 차이가 있는 게 현실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이어 ‘전략적 인내 시즌 2’로 가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끝까지 신뢰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오는 8일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하고 바이든 대통령 레임덕이 조기에 시작될 경우 미국의 대북정책은 과연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미국 당국자의 발언 하나에 허둥대기 전에 ‘담대한’ 정책 재점검을 통한 중심 잡기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