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 죽은 개 사체가 아파트 복도에 방치.. 범인은 10대 청소년

입력
2022.11.01 09:00

지난달 20일, 전북 군산시의 한 아파트 단지. 아파트 복도를 청소하던 관리 직원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계단은 피가 흥건하게 젖어 있었습니다. 피가 난 곳을 따라 가보니, 복도 한 가운데 개의 사체가 버려져 있었습니다. 관리직원은 섬뜩한 광경에 차마 사체를 수습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결국 경비원이 나서 마대로 개의 사체를 수습하고 인근 지역에 사는 주민 A씨에게 “이 개 사체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상의했습니다. A씨는 사정을 전해 듣고 경찰에 신고한 뒤,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에도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 뒤, 범인은 곧바로 확인됐습니다.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10대 청소년 B군이었습니다. 경찰이 확인한 아파트 CCTV에는 B군이 죽은 개를 끌고 복도로 나와 내던지는 모습까지 담겨 있었습니다. B군은 경찰 앞에서 “내가 개를 죽었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B군의 초기 진술이 확인된 만큼, 경찰은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어야 합니다. 그러나 경찰은 주요 증거인 사체를 수습하지 않았습니다. A씨의 제보를 받고 서울에서 군산까지 찾아온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들이 개의 사체를 보관해야 했습니다. 현장에서 사체를 수습한 동물자유연대 구인회 활동가는 “개의 사체가 사건의 진상을 밝힐 주요 증거인 만큼 동물병원을 통해 개의 정확한 사인을 밝혀야 했다”고 전했습니다.

동물병원에서 확인된 개의 사인은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수의사의 부검 소견에 따르면 두개골 골절 및 귀 부위에서의 출혈이 확인됐습니다. 소견서에는 “골절 정도가 심각하여 상당한 외력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심각한 뇌손상에 의해 개가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더 안타까운 점은, 세상을 떠난 개가 아직 1살도 되지 않은 강아지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개를 살펴본 수의사는 개의 유치가 남아 있는 것을 보아 6개월령 정도로 추정된다고 소견서에 적었습니다.

동물자유연대는 이 소견서를 토대로 B군에 대한 고발장을 전북 군산경찰서에 접수한 뒤 고발인 조사를 받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는 “왜 초동수사 과정에서 개의 사체를 수습해 증거를 보전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경찰 관계자는 “원칙적으로는 그 절차가 맞지만, 현실적으로 사체를 보관할 장소도 없고 인근 동물병원에 부검을 요청해서 진행할 만큼 인력이 충분치 않다”며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동물자유연대 송지성 위기동물대응팀장은 이에 대해 “경찰청에서 ‘동물대상 범죄 벌칙 해설’을 개정했지만 여전히 일선 현장에서는 매뉴얼대로 시행할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며 “수사 매뉴얼을 제대로 운영할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제보자 A씨는 동그람이에 “B군이 문제를 일으킨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라며 “과거에도 방화 등 수차례 범죄를 벌인 적이 있고, 동물학대 사건이 벌어진 뒤에도 오토바이를 절도해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경찰 관계자도 “B군에 대한 수사가 동물학대 한 건에 국한된 것은 아니며 별건으로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B군의 연령이 촉법소년에 해당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경찰은 곧 B군과 피고발인 조사 일정을 조율해 수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송 팀장은 “온라인 상에서 동물학대 사진이나 영상을 공유하는 청소년들의 범죄는 알려진 바 있지만, 이렇게 청소년이 직접 잔혹하게 동물을 살해하는 사건은 처음 접하는 듯하다”며 청소년 동물학대 범죄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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