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 신고 빈민촌 방문… '슈퍼리치' 영국 총리에 거세지는 비판론

입력
2022.10.28 22:28
리시 수낵 총리 가족 재산 ‘1조2000억원’
캘리포니아 펜트하우스 등 부동산 여러채

영국 내에서 ‘슈퍼 리치’로 불리는 1조원 대 자산가 리시 수낵 신임 총리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가파른 물가상승(인플레이션)과 에너지난으로 시민들이 허덕이는 상황에서 명품으로 둘러싼 채 빈민가를 방문하는 등 민심과 동떨어진 행보를 보이는 탓이다.

27일(현지시간) 영국 매체 선데이타임스에 따르면 수낵 총리 가족 재산은 7억3,800만 파운드(1조2,000억 원)에 달한다. 많은 재산이 비난의 이유가 될 수는 없지만, 물가가 치솟고, 지출을 삭감해야 하며, 경기 침체에 직면한 상황에서 자산가 새 총리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이 커지고 있다.

이미 야당과 여론 일각에서는 대놓고 그의 재산에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노동당은 지난 26일 국립 의료 시설에서 일하는 간호사가 2만 년을 일해야 쌓을 수 있는 재산이라고 몰아세웠다. 정치 평론가들도 특히 경제가 어려운 때에는 수낵 총리의 재산이 집중 조명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많은 재산이 신임 총리를 영국 대중과 갈라놓고 있다는 얘기다.

다만 이런 배경이 그의 정치적 인기나 정책 추진에 변수가 될지를 놓고는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엇갈린 의견이 나왔다. 버넌 보그다노 킹스칼리지런던 정치행정학 교수는 “수낵 총리의 재산이 변수가 될 것”이라며 “그가 지출 삭감에 따른 고통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취약 계층의 호소에 민감하다는 것을 입증하려면 덜 부자인 누군가 보다 더 나아가야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낵 총리와 그가 속한 보수당은 은행 계좌가 아니라 행동이 중요한 것이라며 이런 비판론에 맞서고 있다. 영국에서 수낵 이전에 가장 부자였던 총리는 에드워드 스탠리(1799∼1869년)다. 18세기 귀족 출신으로 개인 재산이 당시 700만 파운드였다. 이를 영국 물가 상승률을 감안해 현재로 환산하면 6억1,300만 파운드(1조63억원)에 달한다.

역대 총리 재산이 대체로 토지 소유에 따른 것이었다면, 수낵 총리 재산에서는 재벌가 출신 부인인 아크샤타 무르티의 비중이 크다. 무르티는 부친이 세운 인도 기술 대기업 ‘인포시스’ 지분 1% 정도를 소유했다. 수낵 총리는 태생부터 ‘금수저’였다기보다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금융계로 진출해 골드만삭스, 헤지펀드 업계에서 경력을 쌓아 자수성가한 쪽에 가깝다.

하지만 점점 그의 재산을 두고 곱지 않은 눈초리가 쏠리는 것은 그가 자신의 배경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냐는 의구심 때문이다. 노동당 대표인 키어 스타머는 26일 하원에서 수낵 총리에게 이른바 ‘비거주 과세 규정’을 철폐할 것인지 질의했다.

이 규정은 영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해외 소득에 대해서는 영국 과세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 수낵 총리 부인인 무르티를 겨냥한 돌직구를 날린 것이다. 앞서 무르티가 이 규정의 수혜자라는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보도가 나오면서 수낵에 대한 지지도가 곤두박질쳤다. 하원에서 수낵 총리는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노동당은 영국 경기 침체가 예고된 상황에서 앞으로도 수낵 총리의 재산을 도마 위에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 노동당 의원은 “다른 이들이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는지 그가 이해할 수 있겠냐는 의문이 쇄도한다”고 말했다. 다만 영국 정치 평론가인 윈 그랜트는 신중한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상황이 나쁘게 돌아간다면 수낵 총리의 재산이 화두가 되겠지만 상황이 꽤 잘 돌아간다면 이슈가 덜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낵 총리의 부동산 보유도 관심사다. 그의 가족은 런던에서도 부촌인 켄싱턴에 아파트 한 채, 침실 5개가 달린 주택 한 채를 소유했으며, 잉글랜드 북부에 수백 년 된 저택 한 채, 미 캘리포니아에 펜트하우스 한 채도 있다.

특히 수낵 총리는 차림새에서도 명품을 애용하는 것으로 포착됐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그는 영국 빈민가 중 한 곳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탈리아 명품 구두 프라다 신발을 신은 모습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화제가 됐다. 한 벌에 수천 달러인 런던 양복점 ‘새빌 로’ 정장을 입은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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