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목종 5년(1002년) 산이 바다 한가운데서 솟아 나왔는데, 꼭대기에 4개의 구멍이 뚫려 붉은 물이 솟다가 닷새 만에 그쳤다.”
제주도의 화산 분출을 기록한 문헌인 신증동국여지승람 기록이다. 이 문헌 때문에 제주에서도 ‘섬 속의 섬’으로 불리는 비양도는 1,000년 전 분출한 화산섬이라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2002년 7월 비양리 포구에는 비양도 탄생 천년 기념비가 세워졌고, 탄생 1,000년을 기념하는 축제까지 열렸다. 하지만 비양도에서 2,000년 전 토기가 출토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과학적 기법을 통해 용암의 생성 연대를 측정하니 2만7,000년 전에 형성된 섬이란 결과가 나왔다.
6일 제주도 등에 따르면, 180만 년 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 제주 본섬을 비롯해 부속섬(유인도) 생성 시기를 둘러싼 연구가 최근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24일 세계유산본부는 한반도 최남단 마라도의 생성 연도를 약 20만 년 전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그간 마라도 생성 시기는 15만 년 전에서 26만 년 전 사이로 추정됐을 뿐, 측정 방식의 한계로 정확한 시기를 특정하지 못했다.
마라도와 지척에 있는 가파도의 생성 시기는 약 82만 년 전으로, 제주도 부속섬 중 가장 오래됐다. 섬이 생성되기 직전 해수면이 현재보다 100m 이상 낮아 육지였지만,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섬이 됐다.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제주의 부속섬 중 비양도가 가장 막내다. 우도보다 4만 년 후에 생성됐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가 '광 여기 루미네선스' 연대측정법을 활용해 우도 내 속칭 ‘돌칸이 해안’과 검멀레 해안에서 채취한 시료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우도는 약 7만 년 전에 생성됐다. 기존 연구에선 우도의 생성 시기를 8만6,000년 전에서 10만2,000년 전 사이 또는 11만4,000년 전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것으로 파악했지만, 그보다 더 짧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려사와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에 남아 있는 기록들을 종합하면, 제주에서 마지막 화산활동이 이뤄진 시기는 약 1,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1만 년 이내 활동 기록이 있는 화산을 활화산으로 분류하는 지질학상 기준에 따르면, 제주는 아직 활화산 지역이다. 실제 제주 한라산이 다시 폭발할 가능성이 상존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다만 그 시기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폭발 강도 역시 현재까지 연구 결과로는 짐작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한라산의 화산 활동 징후는 없지만, 부속섬 생성 시기 등의 연구가 제주의 화산활동을 예측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전망이다. 세계유산본부 관계자는 “제주 화산활동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화산섬 제주의 비밀이 많다"며 "앞으로 연구지역을 확대해 제주도 전역의 형성 과정을 밝혀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