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로 물든 대구의 밤… 지역 축제 한계 넘어

입력
2022.10.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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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화제작 바그너 '반지'
23일 마지막 편 '신들의 황혼'으로 성공적 마무리
독일 만하임 극장과의 교류로 220여 명 방한
대구 제작 오페라 '심청' 2026년 독일 만하임서 공연

일주일에 걸쳐 열린 총 16시간에 이르는 오페라 4편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커튼콜이 10분 가까이 이어졌다. 감격에 겨워 무대에 오른 220여 명의 제작진과 1,500석을 가득 메운 관객은 막이 모두 내려올 때까지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대장정을 함께 한 끈끈한 동지애를 나누는 듯한 열정적 인사였다.

23일 공연된 '신들의 황혼'을 비롯해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른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는 한국 오페라사에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겼다. '라인의 황금'(16일), '발퀴레'(17일), '지그프리트'(19일)에 이은 이날 공연까지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이 국내에서 연이어 공연되기는 2005년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 초청 공연 이후 17년 만이다. 독일 만하임 국립오페라극장의 지난 7월 초연작을 오케스트라까지 통째로 옮겨 온 이번 '반지'는 가창력은 물론 극적 표현력까지 뛰어난 성악가들의 활약과 지휘자 알렉산더 소디가 이끌어낸 역동적 '바그너 사운드'가 돋보인 무대였다.

북유럽 신화를 모티프로 마법의 힘을 지닌 반지와 신, 소인족과 거인족의 이야기가 뒤얽힌 오페라는 한국인 연출가 요나 김의 손을 거쳐 굳은 화석이 아닌 살아 있는 우리 시대의 이야기로 탈바꿈했다. 신의 피를 이어받은 영웅 지그프리트는 흰 셔츠에 정장 바지를 입었다. 황금을 지키는 라인강의 세 요정은 걸그룹처럼 반짝이는 짧은 치마에 은발의 단발 가발을 썼다. 무대장치는 최소화하고 핸드헬드 카메라를 활용한 실시간 촬영 장면을 무대 전면에 띄웠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한 리얼리티쇼처럼 극 중 막장 드라마가 작금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의미로 읽혔다.

4부작 일정을 통틀어 가장 많은 박수갈채를 끌어낸 주인공은 지휘자 알렉산더 소디와 만하임 극장 오케스트라였다. 100명이 넘는 대편성 오케스트라는 안정적이면서도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한국 오페라 팬 사이에서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 않지만 바그너 가수로서 묵묵히 제자리를 지켜 온 성악가들의 노련미도 빛났다. 이날은 완벽히 무대를 장악한 브륀힐데 역의 미국 소프라노 다라 홉스 등 여성 성악가들이 특히 큰 호응을 얻었다. 4편을 모두 관람한 음악 칼럼니스트 황장원씨는 "대작 오페라 '반지'를 국내 무대에 올린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오케스트라와 성악가의 역량이 특히 뛰어난 완성도 높은 공연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날 '신들의 황혼'을 관람한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 전문 진행자 장일범씨는 "2005년 마린스키 극장의 '니벨룽의 반지'는 정통 독일 버전이 아니어서 독일어 발음 등의 면에서 아쉬움이 남았다"며 "이번 '반지'는 현대적 무대 연출마저 최신 독일 트렌드가 반영된 것이어서 바그너에 정통한 독일 극장 공연의 감동을 만끽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반지'는 올해로 19회를 맞은 대구국제오페라축제(9월 23일~11월 19일) 초청작으로 공연 전부터 큰 화제였다. 오페라 애호가들의 높은 관심을 방증하듯 이날 객석 점유율은 80%가 넘었다. '반지' 4편 전체의 객석 점유율은 72.8%였다. 대구 이외 지역 관객도 절반이나 됐다. 올해로 5년째 대구국제오페라축제를 찾았다는 경북 칠곡의 정애영(47)씨는 "수준 높은 이번 '반지' 4편을 접하고 나니 이제야말로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지역 축제의 한계를 넘어 본격적인 국제 축제로 격상한 느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반지' 공연은 지난해 대구오페라하우스가 개최한 '대구 유네스코 음악제'를 통해 인연을 맺은 만하임 극장과의 공연 교류 프로젝트를 통해 성사됐다. 제작비를 두 극장이 절반씩 공동 부담하는 조건이다.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제작해 이번 축제의 폐막작(11월 18, 19일)으로 무대에 올리는 작곡가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을 같은 조건으로 2026년 만하임 극장에서 공연한다.

'심청'은 1972년 뮌헨올림픽 문화축전을 위해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당시 총감독 귄터 레너르트가 윤이상에게 위촉한 독일어 오페라다. 한국에서는 27년 후인 1999년에야 초연됐다. '심청'은 내년부터 불가리아 소피아 국립극장, 헝가리 에르켈 국립극장, 이탈리아 볼로냐 시립극장 등에서도 공연된다. 이 때문에 이들 극장 관계자들도 축제 폐막작으로 선보이는 내달 공연을 관람할 예정이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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