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바다의 풍랑을 곁에 둔 실존적 감각 때문인지, 부산은 늘 뜨겁다. 공연을 할 때마다 느낀다. 객석은 금세 달아올라 열광으로 돌진한다. 야구 열기도 마찬가지다. 팀 성적은 계속 바닥을 헤매고 있지만, 롯데 팬덤은 한결같이 최고다. 기업 롯데는 행운처럼 얻은 이 자산에 늘 감사해야 한다. '봉다리' 응원과 신문지 응원은 사직구장 아니면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상대 투수가 견제구를 던지면 "마! 마! (좀생이처럼 굴지 말고 그만하라는 뜻)"라 외치고, 파울볼을 누군가 잡으면 어김없이 "아주라(아이에게 줘라)"가 터져 나온다. 응원에도 야성이 있다는 것을 사직구장은 보여준다. 롯데 팬이 아니라도 이 거친 열정에 쉽게 감염된다.
"덕아웃에서 보는 사직야구장 관중석만큼 멋진 풍경은 아마 없을 겁니다. 또 타석에서 들리는 부산 팬 여러분의 함성만큼 든든하고 힘이 나는 소리도 아마 세상에 없을 겁니다." 최근 은퇴한 롯데 타자 이대호의 고별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경의를 어디에 가장 먼저 바쳐야 할지 알았다. 젊은 이대호의 야구 영혼은 사직구장의 저 뜨거운 함성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를 키운 건 8할이 사직구장의 열기다. 이대호 없는 롯데도, 롯데 없는 이대호도 상상할 수 없다.
고별사는 또 이어진다. "팬 여러분은 제가 했던 두 번의 실수보다 제가 때려낸 한 번의 홈런을 기억해주시고…" 영광뿐인 삶의 서사가 어디 있으랴. 이대호는 화려한 퇴장의 순간에도 실패의 순간을 잊지 않고 불러냈다. 홈런의 영광과 실수의 아픈 기억을 나란히 병치시키는 이 감각, 정말 우아하지 않은가. 삶의 얼룩을 자신 있게 내보일 수 있는 사람만의 품위가 있다.
그리고 만년 성적 부진에 시달리는 팀을 위해 따뜻한 격려의 말도 잊지 않았다. "절대 포기하지 않고 어떤 순간이든 1점만 더 내고, 1점만 막아내면서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간다면…" 이 순간 이대호는 뛰어난 야구 선수이기 이전에 삶의 현자다. 이 멋진 문장은 삶의 현장에서 고투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독려의 말로 삼아도 좋겠다. 삶은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지금 "1점만 더 내고, 1점만 막아내는" 절실한 투지가 중요하다. 그 절실함으로 "용감하게 나가자"고 이대호가 우리를 다독인다. 영혼이 환하고 따뜻해진다.
"저에게 푸른 유니폼의 자부심을 가르쳐주셨던 고 최동원 선배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모든 게 좋았지만 이대호의 고별사에서 딱 한 부분만 집으라면, 바로 여기다. 최동원이 가르쳐준 자부심은 무엇이었던가. 홈런을 맞으면 똑 같은 코스로 공을 던지던 배짱, 84년 한국시리즈 때 연이은 등판을 마다하지 않고 "마, 함 해 보입시더"라고 나서던 용기, 후배들을 위해 선수협의회 회장을 맡아 삶의 불행을 묵묵히 감당한 의로움, 이런 것들이라 믿는다. 사직구장의 뜨거움 그 자체인 '전설' 최동원과, 그 뜨거움이 낳은 '적자' 이대호의 영혼이 연결되는 순간, 나는 눈앞이 잠시 아득해졌다.
"롯데의 이대호, 이제 타석에서 관중석으로 이동하겠습니다." 고별사는 마지막까지 아름답다. 야구를 사랑하는 한 명의 팬으로 돌아가겠다는 다짐이다. 연설을 고민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이대호의 고별사를 밑줄 쳐 가며 공부하는 게 좋겠다. 수사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그 모범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수사를 빛나게 하는 건, 결국 삶의 철학에서 우러나온 진심이라는 것도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