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플랫폼 기업 카카오의 유례없는 서비스 중단 사태가 '국민적 분노'에서 '국민적 공포'로 바뀌고 있다. 카카오가 만든 '초연결 사회'가 단 한 번의 불로 멈추면서 그 취약성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카카오 측이 "데이터센터 화재와 전원 공급 중단까지는 예측하지 못했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면서 비판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2018년 KT 아현지사 화재로 대규모 통신 장애가 발생했음에도 그 위험성을 무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15일 오후 3시 33분쯤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SK C&C 데이터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8시간 만인 오후 11시 46분 꺼졌지만 안전 문제로 전력 공급이 늦어졌다. 해당 데이터센터를 쓰는 카카오의 모든 서비스도 약 10시간 완전히 멈췄다. 16일 오전 10시 40분부터 1차 현장 감식을 진행한 경기남부경찰청 과학수사대와 소방 당국 등은 전기실 내부 배터리 보관 선반에서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보기술(IT) 업계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카카오 연결 사회'의 부작용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플랫폼이 만들어 낸 초연결 사회의 취약성이 드러난 대표 사례"라며 "초연결 사회에서 생길 수 있는 갖가지 기술적, 사회적 위험 요소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IT 업계가 미래 사업 전략을 짤 때도 큰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카카오 사태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예상보다 커지면서 정부가 데이터 산업 등 부가통신 서비스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이날 SK C&C 화재 현장을 찾아 "그동안 부가통신 서비스는 (일반적으로) 그 중요도가 낮다고 생각돼 왔다"면서 "정부도 점검·관리 체계를 보완하는 등 필요한 제도적·기술적 방안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초연결 사회의 핵심인 데이터센터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실제 SK C&C 판교 데이터센터는 지상 2~6층을 데이터센터로 쓰는데 불은 지하 3층 전기실에서 난 것으로 알려졌다. SK C&C는 불이 나자 안전을 이유로 전체 전원 공급을 끊었다. 데이터센터가 아닌 전기실 화재로 데이터센터 전체가 셧다운되고 화재 진압 이후에도 전력 공급이 지연되자 데이터센터 자체의 안정성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카카오나 네이버 입장에선 데이터센터가 전원을 차단해버리는 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SK C&C가 데이터센터 전원을 차단한 결정이 잘된 것인지 그 내용을 카카오와 네이버에 통보했고 동의를 구했는지를 명확히 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들도 편리함을 앞세웠던 카카오의 연결 사회를 향한 믿음을 내려놓으려는 분위기다. 카카오는 2012년 LG CNS의 서울 가산 데이터센터 전원 장치 이상으로 카카오톡 등 주요 서비스가 4시간가량 멈췄다. 당시 카카오는 서버 이원화를 약속했고 지금도 복수의 데이터센터를 활용하지만, 단 한번의 화재로 속수무책 무너지면서 "10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실제 소비자들은 이번 사태로 큰 불편을 겪었다. 평소 카카오페이로 배달앱을 이용했던 대학생 김모씨는 결제가 막히면서 새로 신용카드를 급하게 등록했다. 택시 호출 서비스인 카카오T를 쓰던 사람들도 우티 등 대체 서비스 앱을 깔아야 했고, 택시 기사들도 호출 콜을 받지 못해 피해를 봤다. 이에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카카오가 국민 서비스들을 제대로 운영할 능력과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는 성토 글이 계속되고 있다.
초연결 사회의 편리성에 가려진 기업의 '사회적 책임' 문제도 다시 불거질 전망이다. 이미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팀장은 "카카오, 네이버 등 공룡 플랫폼 기업들은 엄청난 수익을 얻고 있음에도 소비자의 데이터를 보호하거나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한 전산망 이중화, 백업 서버 확보 등 투자가 부족했다"면서 "해당 플랫폼에 입주한 소상공인이나 택시종사자 등을 대상으로 한 피해 배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문제를 공론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카카오 내부에선 유료 서비스 일부는 배상을 검토하는 분위기지만 카카오톡 등 무료 서비스 관련해서는 배상이 쉽게 결론 나지 않을 것으로 보여 거센 논란이 일 가능성이 높다.